"우리는 모두 유기견이야" 함께 사는 법 묻는 '그 개'
(서울=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 "시발" 욕이 튀어나온다. 소녀는 곧바로 "아니야"하며 자신의 뺨을 때린다. "시발새끼! 안돼!" 욕의 수위가 높아질수록 뺨을 때리는 강도도 강해진다.
틱 장애를 앓는 16살 소녀 '해일'은 증상이 나타날 때마다 욕설을 내뱉는다. 그와 아빠는 장애를 극복하고자 온갖 노력을 다했지만, 소용은 없었다. 자연히 해일은 학교에서 왕따가 됐다.
해일이 가장 좋아하는 일은 뒷산 산책이다. 인적이 없는 산길에선 마음껏 욕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욕을 해도 되는 이곳에선 오히려 틱 증상도 나타나지 않는다.
어느 날 뒷산을 거닐던 해일에게 유기견 한 마리가 나타난다. 온갖 재롱을 피우며 뒤를 따라오는 유기견에게 해일은 '무스탕'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해일은 무스탕에게 "괜찮아, 우리는 모두 유기견이야"라고 속삭인다.
김은성 작가의 신작 '그 개'가 다음 달 5일부터 21일까지 부새롬 연출로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무대에 오른다.
서울시극단은 18일 세종문화회관 예술동 시극단연습실에서 제작발표회를 개최하고 '그 개'의 1막 주요 장면을 시연했다.
1장 '안녕 무스탕'에서는 배우 이지혜가 해일 역을, 안다정이 무스탕 역을 맡아 둘의 첫 만남을 풀어냈다.
2장 '우리 별이'는 배우 김훈만과 신정원이 각각 수학강사 영수와 미술강사 선영 역을 맡아 3살 아들 '별이'를 둔 맞벌이 부부의 고충을 그려낸다.
3장 '보쓰는 나의 힘'에서는 해일 아빠가 운전기사로 일하는 저택의 주인 '장강'(윤상화 분)과 대필 작가 '현지'가 등장해 부유하지만 가족에게 버림받고 애완견 '보쓰'를 애지중지하는 장강의 어둡고 쓸쓸한 모습을 드러낸다.
서울시극단 김광보 단장은 이날 발표회에서 "이 작품은 부조리하고 냉혹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그리지만, 그렇게 어렵게 풀지 않고 밝고 경쾌한 톤으로 풀어나간 것이 큰 미덕"이라고 소개했다.
김은성 작가는 "전작을 발표하고 1∼2년 쉬는 동안 성북동 등산로를 자주 다녔다. 거기서 만난 유기견과 성북동 저택들이 잔상으로 남았다"며 "이번 작은 '과연 우리는 서로 어울려 잘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연극은 장강의 저택 정원을 무대로 해일과 무스탕 이야기, 영수와 선영 이야기, 장강 이야기가 교차하면서 진행된다.
저택의 정원은 복합적인 의미가 있는 공간이다. 이곳은 한때 장강의 손자·손녀가 뛰어놀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장강이 외로움을 곱씹는 공간이다.
반면 영수와 선영에게는 '우리도 언젠가는 별이와 함께 저런 저택에서 살아야지'라는 꿈을 꾸게 하는 공간이고, 해일에게는 아빠의 노동공간이자 본인의 상상을 펼치는 공간이기도 하다.
부새롬 연출은 "장강은 윗세대 인물이고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다. 실제 이 세계의 이야기는 장강에서부터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며 "그래서 이 작품은 장강의 공간을 무대로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해일이 틱 장애를 앓는 설정에 관해 "세상으로부터 흘러들어오는 고통의 은유적인 표현이 아닐까 싶다"며 "이 세상이 어떻게 되어야 할지 생각을 나누는 작품이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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