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님 미리 인사드립니다"…추석 차례는 이제 옛말
"명절에 대한 재인식…시대에 따른 가족 문화 변화상 반영"
(전국종합=연합뉴스) 인천에 사는 주부 이모(59) 씨는 3년 전부터 남편의 제안에 따라 명절 차례는 지내지 않고 연휴 전에 산소에 가서 간단하게 성묘만 한다.
명절 당일 서울에 사는 자녀들이 오면 다 함께 외식하러 나가면서 명절 음식을 따로 준비할 필요가 없다.
큰아들이 좋아하는 부침개와 송편은 인터넷 명절 음식 업체를 통해 2인분 정도만 주문해서 먹는다.
이 씨는 "명절에 차례를 준비하려면 최소 20만원 이상이 든다"며 "돈도 돈이지만 음식을 누가 준비할 건지를 두고 동서들이랑 신경전을 벌여야 해 더 곤혹스러웠다"고 말했다.
이어 "차례를 지내지 않으니 동서네와 모여 외식을 하고 과거에 음식을 준비하던 나머지 시간에는 제대로 쉴 수 있다"며 "차례를 지내지 않는다고 해서 조상을 섬기는 마음이 없어진 건 아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명절 차례를 연휴 전에 미리 지내거나 명절 당일 가족끼리 간단히 성묘로 대신하고 나머지 연휴에는 자기 계발이나 여행 등을 하면서 지내는 가정들이 늘고 있다.
연중 설과 추석 중 한 번만 차례를 지내는 가정도 있다.
부산에 사는 김모(62·여) 씨 가족은 지난해부터 설날에만 차례를 지내고 추석 때는 가족과 함께 여행을 가기로 했다.
김 씨는 "가족과 친지들이 서울·대전 등지에 흩어져 있어 1년에 2차례나 다 같이 모이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며 "설날은 차례를 지내고 추석은 시간이 맞는 가족들끼리 여행을 가기로 했다"고 전했다.
김 씨는 설날 이후 일찌감치 비행기 표를 싼 가격에 구매해 둬 추석 연휴에 베트남 다낭으로 딸과 함께 여행을 떠날 예정이다.
특히 30∼40대를 중심으로 차례를 지내지 않거나 앞당겨 지내는 명절 문화는 더 빠르게 퍼지고 있다.
온라인 쇼핑업체 티몬이 추석을 앞두고 30∼40대 남녀 각 250명, 총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추석 차례를 지내지 않는다고 답한 사람이 38.8%에 이르렀다.
특히 명절 증후군을 겪지 않는다고 응답한 비율은 56.2%였다.
차례를 지내고 친지 맞이에 바빴던 명절 연휴가 30∼40대를 중심으로 이젠 휴식과 여행, 자기 계발을 위한 시간으로 바뀌고 있다.
대구가 본가인 김승준(29·서울) 씨는 "차례를 생략하고 가족끼리 외식을 하기로 했다"며 "명절에 온 가족이 다 한자리에 모이는 데 의의를 둔다"고 말했다.
부산에 사는 이상원(33) 씨는 "추석 때 조용한 곳으로 혼자 캠핑을 가 독서를 할 생각이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변화가 가족주의에서 개인주의로의 변화, 차례에 대한 가치관 변화, 1인 가구 증가로 인한 가족 구성원의 지리적 공간적 분리 확산, 전통적인 성 역할에 대한 재인식 등 다양한 요인 때문으로 분석했다.
송유진 동아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세대에 따라 변화를 받아들이는 정도에 따라 갈등도 있을 수 있겠지만 반드시 하나의 방식으로만 명절을 지내야 한다는 생각이 서서히 바뀌고 다양한 방식이 인정되고 있다"며 "시대의 변화에 따라 가족 문화도 변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손현규, 김선형, 손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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