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몰리는 인쇄·디자인 메카로…부활 꾀하는 충무로 인쇄골목

입력 2018-09-20 08:00
청년 몰리는 인쇄·디자인 메카로…부활 꾀하는 충무로 인쇄골목

서울시 '다시·세운 프로젝트' 2단계 사업…인쇄기술교육·창작허브로

인쇄업체 5천여곳 밀집…사회·산업 변화 발맞춰 외관정비·혁신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우리는 딴 거 없지. 일감을 많이 줘야지 뭐. 서울시가 뭘 한다고는 하는데 잘 모르겠어요. 그냥 일감이 많아지면 좋지 뭐."

1982년부터 36년간 서울 중구 충무로(을지로) 인쇄골목에 터를 잡고 일해온 이순교 경일재단 대표의 말은 단순하고 명쾌했다. 먹고 사는 문제의 해결.

그는 부지런히 말을 하면서도 손으로는 명함과 청첩장을 재단했고, 한 지차제의 '○○ 경고장'을 찍어냈다. 능숙한 손놀림에 작업 시간은 별로 들지 않았다. 작업장 한쪽에는 '○○○ 국산 통참깨' '○○ 맥주' 스티커 라벨이 한 무더기 쌓여있었다.

이 대표는 "일하는 시간보다 노는 시간이 더 많으니 문제"라며 "예전에는 정말 온종일 일했고 그래서 행복했다. 절반이 뭐야, 지금은 일감이 예전의 3분의 1로 줄어든 것 같다"고 말했다.

행정구역으로는 '인현동'이라 불리는 충무로 인쇄골목에는 경일재단과 같은 인쇄업체가 5천500여곳 모여있다. 대부분이 이 대표처럼 30년 이상 이 골목에서 일하며 골목의 흥망성쇠를 같이해온 인쇄 기술장인들의 영세업체이다. 이들의 바람은 이구동성 이 대표와 같았다.

서울시가 진행하는 세운상가군 재생사업 '다시·세운 프로젝트'의 2단계 사업이 바로 충무로 인쇄골목의 부활이다. 을지로와 충무로 일대를 현장 중심의 인쇄기술 교육 장소로 활용하고, 청년들이 찾아오는 인쇄·디자인의 혁신 공간으로 탈바꿈시킨다는 계획이다.



◇ 조선시대에 기원…1990년대 전후 호황기·IMF 이후 내리막

충무로 인쇄골목이 직접적으로 조선시대부터 이어져온 것은 아니지만 1403년 주자소 설치를 기준으로 할 때 600여년의 역사적 기원을 갖는다. 4호선 충무로역 5번 출구 남삼스퀘어빌딩 앞이 옛 주자소 터다. 주자소는 조선시대 활자를 주조하고 책을 찍어내는 업무를 담당하던 관청이다

또한 서울 도심부의 주자동, 필동, 묵정동 등의 지명도 주자소의 입지, 붓과 먹을 파는 상점의 밀집과 같은 조선시대 인쇄출판문화의 흔적과 관련이 있다.

4호선 명동역 3번 출구 숭의여자대학 제1별관 정문은 교서관 터다. 조선시대 서적 교정, 축문 작성, 인장 전각 등을 담당하던 관청이다. 또 근대 활판인쇄기를 처음 도입한 박문국(11883), 최초의 민간인쇄소 광인사(1884)가 세워진 곳도 을지로 2가였다.

이후 1910년 우리나라 최초의 상설 영화관인 경성고등연애관을 시작으로 경성극장, 낭화관, 중앙관 등이 을지로에 등장하면서 영화전단지를 찍기 위한 인쇄소들이 을지로 영화관을 중심으로 형성되었고, 한국전쟁 후 을지로에 인접한 충무로까지 인쇄골목이 형성됐다.

1970년대 급속한 경제개발은 도심부 인쇄업의 양적·지리적 팽창으로 이어졌다. 종합무역상사들의 업무량이 급증했고, 이를 뒷받침하는 각종 인쇄물을 찍어내는 인현동 인쇄소들 역시 활황을 맞았다. 수출입 거래에 필요한 봉투, 편지지, 송장, 포장명세서, 수출승인서 등 수많은 인쇄물이 필요했다.

또 광화문을 중심으로 한 관공서들이 발주한 공문서, 보고서, 양식 인쇄 주문이 쏟아졌고, 충무로 영화산업의 성장 역시 이곳 인쇄소의 성장을 이끌었다. 인현동 인쇄소들은 충무로의 대형극장들 바로 옆에 있어 극장 상영용 필름을 현상하고 포스터, 극장표, 대본 등을 인쇄하면서 지역에 기반을 둔 고정적인 수요를 확보할 수 있었다.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는 스포츠와 문화행사 포스터를 비롯해 컬러 인쇄물 수요가 늘어났고, 1987년 이후 민주화 흐름도 선거를 통해 인현동 인쇄골목에 영향을 미쳤다. 대통령 직선제 부활, 소선거구제와 지방자치제가 실시되면서 선거횟수가 늘면서 선거에 필요한 공보물, 포스터, 현수막, 홍보전단, 명함 등의 물량이 인현동의 주요한 수입원이 됐다.

줄곧 상승세를 타던 을지로 인쇄골목은 1990년대 중반 최고 호황기를 맞는다. 하지만 얼마 후 1997년 외환위기로 허리가 꺾이게 된다.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로 고객 회사들이 부도를 맞거나 지출을 줄이면서 인쇄물량이 급감했고, 환율이 급등하면서 수억원 대 고가의 외제 기계를 구입한 인쇄업자들의 리스료 부담이 폭등했다. 또한 1997년말 책자용 홍보 인쇄물을 종전 4종에서 2종만 허가하는 등 선거법이 개정되고, PC와 노트북과 같은 개인 정보통신수단의 급속한 보급도 인쇄골목에 직격탄이 됐다.

인현동의 역사를 기록한 책 '세상을 찍어내는 인쇄골목 인현동'(서울역사박물관)은 "과거 인쇄물이 차지했던 독점적인 정보 기록과 전달 매체로서의 지위를 개인 정보통신수단이 빠르게 잠식해갔다"며 "사회경제 구조의 변화, 선거 홍보물 규제, 기술변화에 따른 인쇄물 수요 감소는 지금도 여전히 인현동 인쇄골목의 정체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 청년들의 창작인쇄산업 거점으로…보행데크 연결해 인구유입 이끌어

서울시가 지난 3월말 발표한 '다시·세운 프로젝트' 2단계 사업은 2020년까지 세운상가 남쪽(삼풍상가∼호텔PJ∼인현상가∼진양상가)을 창작인쇄산업 중심지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서울시는 7개로 이뤄진 세운상가군과 그 주변을 1·2단계로 나눠 활성화하는 사업을 진행 중이며, 이중 세운상가 북쪽(세운·청계·대림상가)을 정비해 제조업 창업기지로 만드는 1단계 사업은 지난해 9월 이미 마무리했다.

한때는 밥 먹을 시간도 없이 바삐 돌아가며 활황을 누리던 인쇄골목은 2000년대 전후로 낙후한 환경과 경쟁력 약화로 '시간이 멈춘 골목'이 됐다.

서울시는 이 일대를 창작인쇄산업 거점으로 혁신하겠다는 계획이다. 토박이 인쇄 장인들의 기술과 청년창작자들의 감각적인 디자인과 아이디어, 소재·후가공·특수인쇄 등 최신 기술을 결합해 청년들이 찾아오는 공간으로 부활시킨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거점 역할을 할 '인쇄 스마트 앵커'(중구 마른내로길 85-5 일원)를 지하 6층∼지상 12층의 규모로 신축해 인쇄 관련 기술연구·교육 기관과 전시·판매시설, 공동장비실을 입주시킨다.

또 세운상가군 건물에는 인쇄 관련 스타트업 입주공간인 '창작큐브'를 설치해 토박이 인쇄 장인들의 기술과 청년들의 아이디어, 특수인쇄·후가공 등 최신 기술을 결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진양상가에는 책을 내고 싶은 독립출판 작가와 세운상가 일대 인쇄업체가 만나 책을 만들고, 독자들은 독립서적을 구매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 인현상가 지하에는 인쇄기술학교, 공방, 인쇄박물관 등을 만든다.



비좁고 미로 같은 골목길의 약점은 공중보행교와 보행데크를 구축해 극복한다. 이를 통해 보행인구를 유입해 지역을 활성화한다는 계획이다.

도심의 남북을 가로지르는 세운상가는 본래 3층 높이 보행로로 모든 건물을 연결한다는 아이디어로 세워졌으나, 2005년 청계천 복원 때 세운∼청계·대림상가 구간이 끊기는 등 애초 계획이 실현되지 못했다.

지난해 9월 세운∼청계·대림상가 구간 공중 보행교를 복원한 서울시는 이번에는 삼풍상가∼호텔PJ∼인현상가 구간에 공중 보행교를 놓는다. 2020년이면 세운상가군 7개 건축물 전체가 보행길로 연결된다. 종묘에서 시작해 세운상가를 거쳐 남산까지 이어지는 남북 보행축이 완성된다.

화물차량 주차장으로 사용하던 인현·진양상가 3층 데크는 전망대와 시민 휴게공간으로 만든다. 전망대 전체를 통유리로 만들어 퇴계로 일대를 조망할 수 있도록 한다.

3대째 을지로 인쇄골목을 지키고 있는 삼성동판 김영삼 대표는 20일 "청년 구직자들이 충무로역이나 을지로역에서 내려서 인쇄골목을 들어서려다가 기겁하고 돌아서는 경우가 있다. 낡고 비좁은 골목길만 보고 지레 겁을 먹는 것"이라며 "사업 내용 정비 못지않게 인쇄골목 외관 정비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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