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어 유명한 흑산도에 '고래공원'이 있는 이유는

입력 2018-09-16 09:21
홍어 유명한 흑산도에 '고래공원'이 있는 이유는

흑산중 역사동아리 '역사탐구대회 대상'…일제 고래수탈역사 보고서



(신안=연합뉴스) 조근영 기자 = 전남 신안군 흑산도는 홍어로 유명한 섬이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흑산도에는 '홍어 공원'이 아니라 '고래 공원'이 있다.

흑산도에서 태어나 살면서 놀이터처럼 고래 공원을 이용해 온 어린 중학생들도 흑산도와 고래가 정확히 어떤 관계에 있는지 알기 힘들었다.

흑산도와 고래에 관련해 옛 기록과 일부 논문 등 자료가 있었지만, 학생들의 궁금증을 풀어주기엔 부족함이 많았다.

전교생이 17명인 흑산중학교 역사동아리가 나서 '고래 공원'이 생긴 이유와 일제강점기 고래 수탈의 역사를 생생하게 세상에 풀어냈다.

당시 일제 포경회사에 근무했던 아버지를 둔 주민을 만난 데 이어 수탈 현장을 탐사하고 자료를 꼼꼼하게 조사한 끝에 학위 논문(?) 수준의 보고서를 만들어 낸 것이다.

박오성 지도교사를 중심으로 정다솜·김서연·이기정·이현서 역사동아리 팀원이 전한 고래 수탈의 역사는 슬프고도 아픈 역사의 현장이었다.

흑산도 해역에는 고래가 엄청나게 많이 살았지만, 일제강점기에 무차별적으로 고래가 학살당했다고 전해진다.

학생들은 일제강점기 고래 수탈 과정을 잘 알고 있는 주민 박인순(84) 할아버지를 만나 흑산도 고래 이야기를 들었다.

박 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 일본 포경회사 대흑산도 사업장 직원으로 일한 아버지를 둔 덕분에 고래잡이 현장과 창고, 작업장 등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었다고 한다.

1905년 러일전쟁 승리 이후 한반도에서 절대적인 포경 독점권을 가진 일제는 동양포경주식회사를 설치해 고래를 수탈했다.

초기 사업 장소는 동해였지만 고래를 너무 많이 잡아 개체 수가 급격하게 감소하자 동해에서 서남해, 특히 흑산도로 눈길을 돌렸다고 학생들은 전했다.

흑산도는 겨울철 평균 수온 7∼8도, 100m 안팎의 수심, 새우·청어·꽁치 등 대형 고래가 살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두루 갖춘 곳이었다.

이러한 흑산도에 일제는 1916년 포경근거지를 설치했다.

학생들은 일제가 한반도 고래의 4분의 1 이상을 흑산도에서 잡아간 사실을 문헌 등 자료를 통해 확인했다.

일제가 무분별한 수탈을 막기 위해 설정했던 최소한의 금어기를 철폐하면서까지 고래를 다 잡아들였다는 끔찍한 사실도 알아냈다.

조선총독부의 금어기 철폐 조치로 고래는 멸종에 가까운 학살을 당했다고 학생들은 전했다.

흑산도 포경근거지는 고래 해체장, 포경 작업실, 고래를 삶는 대형 가마솥 창고, 고래를 바다에서 끌어올리는 기계 외에도 사무실, 목욕탕, 약방, 일본인 주거지를 모두 포함하는 장소였다.

고래를 끌어 올리는 기계는 석탄으로 증기 보일러를 돌려서 수증기를 보낸 후 그 수증기로 작동을 시켰다고 한다.

고래를 끌어 올리면 본격적으로 힘든 고래 해체 작업이 시작되는데 해체 작업은 조선인들을 시키고 일본인들은 사무실에서 총괄했다고 한다.



흑산중 역사동아리(H·S·I:Heuksan history Scene Investigation)는 일제강점기 고래 수탈 역사를 밝힌 보고서로 지난 15일 열린 '제8회 전남 청소년 역사탐구대회'에서 1위인 대상을 받았다.

전남의 중·고등학교에서 100여개 팀이 각 지역의 다양한 역사적 주제로 출품한 가운데 거둔 대단한 성과다.

흑산중 역사동아리는 지난해 '홍어장수 문순득, 새로운 세계를 만나다'란 주제로 금상을 받은 바 있다.

동아리 팀장을 맡은 3학년 정다솜 양은 16일 "이번 발표회가 일제의 멸종에 가까운 흑산도 고래 수탈 이야기를 널리 알릴 좋은 기회가 된 것 같아 가슴이 뿌듯하다"면서 "지도교사를 비롯해 도움을 주신 모든 분께 감사하다"고 말했다.

chog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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