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되어' 언제나 그 자리에…故조동진 1주기 추모 공연
전인권·한영애·장필순 등 출연…생전 사진·육성 흘러나와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가수 한영애는 스크린 속 강물 위에 떠 오른 고(故) 조동진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또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를 하고는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미소 지었다.
조동진의 대표곡 '제비꽃'과 '항해'를 부르고 무대를 떠나면서다. 한영애는 '소리의 마녀'답게 특유의 음산한 음색으로 그가 남긴 아름다운 시어를 한음 한음 짚어갔다.
15일 오후 7시 서울 용산구 한남동 블루스퀘어 아이마켓홀에서 '조동진 1주기 기념 콘서트-2018 행복한 사람'이 열렸다. '포크계 거목' 조동진 1주기를 맞아 생전 연이 깊거나 영향을 받은 동료 가수들이 모여 고인의 노래를 부르며 추억하는 자리였다.
조동진은 '여름은 벌써 가버렸나/ 거리엔 어느새 서늘한 바람'이란 노래 가사처럼 '나뭇잎 사이로' 찬 기운이 깃들 즈음이던 지난해 8월 28일 우리 곁을 떠났다.
공연 오프닝 영상 속 아름다운 우주 공간에 섬처럼 떠 있는 나무는 조동진의 생전 모습 같았다. 그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으며, 흐름에 휘둘리지 않고 소신을 택했다. 생전 6장의 앨범을 남길 정도로 호흡이 길었지만 안주하지도 않았다. 덕분에 그의 음악은 마지막 앨범인 6집 '나무가 되어'처럼 어느덧 우리 곁에 나무로 뿌리내렸다.
한영애는 별세 1주일 전 조동진을 만났다고 했다.
"일 때문에 '다시 오겠습니다' 하고 일어나자, 엘리베이터까지 따라 나오셔서 '저녁인데 밥을 안 먹고 간다'고 말씀하셨죠. 전 '다시 와서 먹겠다'고 했는데…. 오늘은 공연 끝나고 쫑파티 가서 저녁을 먹고 가려고요."(한영애)
동료 가수들은 각기 부르고 싶은 조동진의 노래를 2~3곡씩 '찜'해 불렀고, 마치 함께 있는 듯 그에게 말을 걸면서 추억담을 풀어냈다.
동아기획 출신으로 '조동진 사단' 막내였던 김현철은 "막내가 쉰살이 됐다"며 처음으로 무대에서 형님의 노래를 부르니 감회가 남다르다고 했다. "자신의 가사에 어울리는 곡을 쓰는 형님의 영향이 제 노래 곳곳에 숨어있다"면서 '흰 눈이 하얗게'와 '아침 기차'를 들려줬다.
김광진은 가수가 된 이후 조동진이 1990년대 이끌던 음악공동체 하나음악에 자주 놀러 다녔다. 그에게 조동진은 "대화를 해도 꼰대 같은 면이 없는, 자유롭고 생각이 열린 선배"였다.
"하나음악 놀러 갔다가 분위기 깨기 싫어서 그냥 가곤 했는데, 예의가 없었다고 느끼셨을 것 같아요. 지금 공연 보고 계시니 그때 슬쩍 간 건 다른 뜻은 없었어요. 용서해주시면 좋겠어요."(김광진)
장필순은 조동진이 안전주의로 음악하지 말라는 교훈을 몸소 보여줬다고 했다. "연습할 때까지 담담했는데 무대서 노래하니 추억으로 요동치는 것 같다"며 "지금 드리고 싶은 말은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이다"라고 말한 뒤 무대에 무릎을 꿇고서 '그날은 별들이'를 고요하게 바쳤다.
조동진의 여동생 조동희가 부른 '슬픔이 너의 가슴에', 강승원이 통기타를 연주하며 부른 '나뭇잎 사이로'와 '긴긴 다리 위에 저녁 해 걸릴 때면' 등 관조적인 시선이 깃든 독백에 관객들은 숨죽이며 귀 기울였다. 피아니스트 임인건은 '언제나 그 자리에'를 연주해 몰입도를 높였다.
노래의 주인은 없었지만 스크린 내내 흘러가는 조동진의 고독한 얼굴, 느릿하면서도 그윽한 육성은 부재로 인한 그리움을 조금이나마 씻어줬다.
조동진이 과거 공연에서 드럼에 신석철, 피아노에 박용준 등 밴드 멤버들을 소개하던 육성에 맞춰 이날 무대 위 멤버들이 인사하자 시공간을 넘나든 느낌을 안겼다. 평소 TV에 잘 출연하지 않던 조동진의 희귀 영상도 흘러나왔다.
마지막 무대를 장식한 것은 전인권밴드였다.
"서로 말 안 해도 동진이 형님이 시키는 대로 잘 하고 있는 것 같아요. 허허허."(전인권)
객석에서 처음으로 큰 웃음이 터져 나왔다. 통기타를 연주하며 '바람 부는 길'과 '겨울비'를 화통하게 노래한 그는 무대에 들어간 뒤 다시 등장했다. "나갔는데, 형님이 앙코르를 해야 하지 않냐고…."
그가 '행복한 사람'을 선창하자 출연 가수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합창했다.
출연 가수들이 떠난 자리에 조동진의 육성이 다시 새어 나왔다. 1990년 12월 계몽아트홀 공연 때였다.
'아침이 오고 다시 저물고/ 내가 그대 하얀 뺨에 입 맞추는 사이/ 입 맞추는 사이~.'('아침이 오고, 다시 저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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