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의회, '독재자 프랑코 묘 이전안' 승인

입력 2018-09-14 11:58
스페인 의회, '독재자 프랑코 묘 이전안' 승인

찬성 172표에 반대 2표, 기권 164표

이장 시기나 장소는 아직 미확정



(서울=연합뉴스) 차병섭 기자 = 20세기 스페인의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묘를 내전 희생자 묘역에서 다른 곳으로 이전할 수 있도록 하는 법령이 스페인 의회를 통과했다.

로이터, dpa 통신은 13일(현지시간) 해당 법령이 스페인 의회에서 찬성 172표, 반대 2표로 승인됐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묘 이전에 반대해온 우파 야당 의원들이 기권하면서, 기권표가 164표 나왔다.

앞서 지난 7월 스페인 매체 엘 문도의 설문조사에서 이장 찬성이 41%, 반대가 39%로 팽팽히 맞선 것과 비슷한 결과다.

프랑코는 1936년 스페인에 좌파 인민전선 내각이 들어서자 쿠데타를 일으켰고, 1939년 내전에서 승리해 집권한 뒤 1975년 사망할 때까지 독재를 이어갔다.

스페인에서는 내전 기간 50만 명이 죽었고 프랑코 독재기에도 수많은 반대파가 살해되거나 투옥됐다.

프랑코는 수도 마드리드 외곽에 초대형 십자가가 들어선 내전 희생자 묘역, 이른바 '전몰자 계곡'을 조성하고 자신도 그곳에 묻혔다.

프랑코 사후 스페인 정치지도자들은 프랑코 정권 지도자들을 단죄하거나 거창한 프랑코 묘역에 항의하는 대신 민주정부를 수립하는 데 주력했다.

하지만 40여 년 후인 올해 6월 우파 정부를 무너뜨리고 집권한 사회당 페드로 산체스 총리가 프랑코 묘 이전을 추진했다.

그는 지난달 프랑코의 묘 이전을 가로막아온 현행법 개정을 정부가 승인하는 법령을 냈다.

묘 이전을 두고 스페인 내 의견이 갈렸고, 프랑코의 후손들이 "확고하고 만장일치로" 이장에 반대한다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산체스 내각은 이장이 여전히 스페인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프랑코 독재기의 불만을 달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산체스 총리가 의회 내 입지가 탄탄하지 못한 상황에서 좌파 진영 내 지지 확보에 애쓰고 있고, 거리 표식이나 동상 등 프랑코 시대 잔재를 없애는 것이 좌파 유권자들에게 인기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카르멘 칼보 부총리는 법령에 대한 의회 투표 전 "프랑코가 희생자들과 같은 장소에 묻혀있는 한 존경이나 명예, 정의, 평화, 화합은 없다"면서 "독재자는 칭송받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날 의회에서 법령이 통과하면서 묘 이전을 위한 법적 장애물은 모두 없어졌다.

다만 프랑코 시신의 이장 장소나 시기에 대해서는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이 밖에 전몰자 계곡에는 장엄한 프랑코 묘역과는 대조적으로 많은 정부군 측 희생자들이 아무 표식 없이 집단매장돼 있는데, 유족들은 정부가 '무명' 희생자들을 다시 발굴해 신원을 밝혀주기를 바라고 있다.

bsch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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