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옛 성에 모인 한중 문화예술인 '화이부동'을 논하다

입력 2018-09-14 06:35
중국 옛 성에 모인 한중 문화예술인 '화이부동'을 논하다

13일 산둥성 타이얼좡 고성서 '동방지혜, 화이부동' 주제로 행사

한국 판소리·중국 그림자극 합동공연 이어 도자·유교 주제 대담





(타이얼좡<중국 산둥성>=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전라도는 운봉이오, 경상도는 함양인디, 운봉함양 두얼품에 흥보가 사는지라. 저 제비 거동을 봐라, 박씨를 입에 물고……"

여든둘 노 명창이 토해낸 맑고 기운찬 소리가 성벽을 넘었다. 은혜 입은 제비가 박씨를 물고서 흥보네로 돌아온다는 '흥보가' 제비노정기는 도시 곳곳에 뻗은 수로와 골목을 타고 타이얼좡(臺兒莊)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중국 산둥(山東)성 남부의 자오좡(棗莊)시 타이얼좡은 명·청 시대부터 상업 중심지였던 곳이다. 베이징과 항저우(杭州)를 잇는 징항대운하 연안에 자리한 이곳에는 수많은 수로와 교량이 있다. 특히 2008년 복원된 타이얼좡 고성은 2만㎡ 부지에 다양한 상업시설을 갖춘 일종의 테마파크로 재탄생했다.

다채로운 문화가 교차하는 타이얼좡 고성 내 란치회당에서는 13일 오후 한중 문화교류를 다지는 행사가 열렸다.

이날 행사는 지난봄 교양 프로그램 '문화대관원' 특집을 통해 한국 문화를 소개한 중국 봉황위성TV가 한국 문화예술 인사들을 중국으로 초청하면서 마련됐다.



개막을 알린 것은 중국 민간의 전통 예술로 2011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그림자극인 피영(皮影)이었다.

반투명 장막 뒤에 몸을 숨긴 천쇼커 산둥성 전승자가 가죽인형들이 달린 막대를 쉼 없이 움직이자, '서유기'의 파란만장한 모험이 눈앞에 되살아났다.

판소리 인간문화재 송순섭 명창은 '흥보가'에 이어 '적벽가' 중 제갈공명이 동남풍을 비는 대목을 선보여 큰 박수를 받았다. 송 명창과 오랫동안 호흡해온 박근영 고수가 함께 무대를 장식했다.

2부에서는 '문화대관원' 왕노상 MC 진행 아래 도자와 유교를 화두로 한중 문화예술인들의 대담이 이어졌다.

양측은 한국 고려청자가 중국 영향을 받아 제작됐다는 점을 짚으면서도, 그에 매몰되지 않고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했다는 의견을 공유했다.

왕 MC는 "청자는 중국 은상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긴 역사를 갖고 있다"며 자부심을 드러내면서도 "중국 청자 영향을 받은 고려는 추가로 3가지 색, 그중에서도 가장 어렵다는 붉은색을 입히는 기술을 가장 먼저 획득했다"고 강조했다.

'문화대관원' 촬영 당시 다양한 한국 도자 현장을 둘러본 왕 MC는 "고려의 위대한 장인들에게 우리 한 번 박수를 보내달라"며 박수를 유도하기도 했다.



정양모 전 국립중앙박물관도 "고려청자는 (중국 청자와) '화이부동'(和而不同)의 관계"라면서 "중국에서 배워왔지만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과 조형을 만들어냈다"고 강조했다

도자 중 백자를 아낀다는 정 전 관장은 "한국 미술은 과장하거나 뽐내질 않고 인간적 기교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존중한다. 가장 수수하게 자연을 닮은 도자가 백자"라고 말하기도 했다.

장남원 이화여대박물관장은 한국 도자문화가 백자로 바뀐 배경을 궁금해하는 왕 MC에게 "조선은 고려가 스스로를 극복하고 새로 만든 왕조였고 그런 점에서 백자는 새로운 조선을 내보이는 데 아주 필요한 장치였다"고 답했다.

뒤이은 대담에서는 '문화대관원' 유교편에 출연했던 이광호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가 작가인 왕스 중화문화촉진회 의장, 왕쇼창 중국문화서원원장 등 중국 인사들과 함께 오늘의 유교를 논했다.

이들은 한국에서 유교 문화의 전승과 유교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는 배경, 유교가 한국인 일상에 미치는 영향 등을 놓고 다양한 의견을 주고받았다.

이날 행사에는 '문화대관원' 한국 특집 제작에 협력한 아리랑TV 및 해외홍보문화원도 함께했다. 3시간 넘게 진행된 행사는 봉황위성TV를 통해 인터넷으로 생중계됐다.

aira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