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수부 "자성대부두 운영사 바꿀 수 있다"…허치슨과 무슨 일?
계약연장 조건으로 태국에 국적선사 터미널 제공 요구…허치슨의 선택 주목
(부산=연합뉴스) 이영희 기자 = 해양수산부가 계약 기간 만료와 재개발을 앞둔 부산 북항의 자성대부두를 2021년까지 가동하되 운영사를 다른 업체로 바꿀 수도 있다고 발표한 배경을 두고 뒷말이 많다.
자성대부두는 우리나라 최초의 컨테이너 전용부두다.
1999년 현대상선이 항만공사와 계약해 전용부두로 쓰다가 2002년 허치슨에 넘겼다. 현대상선은 이후 신항으로 이전했다.
자성대부대 현 운영사인 허치슨은 홍콩에 본사를 둔 글로벌터미널운영사(GTO)이며, 항만공사와 맺은 임대계약이 내년 6월 말로 끝난다.
해수부가 추진하는 북항 2단계 재개발 대상이기도 해 자성대부두의 향배에 항만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해수부는 13일 발표한 부산항 터미널 운영사 개편 계획에서 자성대부두를 2021년까지만 운영하고 2022년 이후에는 재개발계획에 맞춰 부산항대교 바깥쪽에 있는 현 신감만부두로 이전한다고 발표했다.
허치슨이 계속 운영하기를 희망하지만 세부 협의 결과에 따라서는 다른 업체를 정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허치슨이 부산항만공사와 맺은 계약에는 최초 30년의 계약이 끝나더라도 임대료 체납 같은 중대한 잘못이 없으면 최장 30년(20년+10년) 더 연장을 협의할 수 있게 돼 있다.
허치슨은 "신항 개장으로 물량이 이탈해 적자를 내는 속에도 한 번도 임대료를 체납하지 않는 등 성실하게 운영해 왔다"며 지난 3월에 20년 연장을 신청한 바 있다.
해수부는 1천여명에 이르는 자성대부두 근로자들의 고용불안 호소에도 6개월 넘게 계약연장 여부에 관해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다가 운영사를 바꿀 수도 있다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컨테이너부두는 하역 장비를 갖추는 데 많은 돈이 들어가기 때문에 최초 임대 기간이 통상 계약이 30년 정도이다. 계약이 끝나더라도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재연장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재개발 등으로 부두가 문을 닫게 되면 대체부두를 제공해왔다.
이런 점에 비춰볼 때 해수부가 자성대부두 운영사 교체 가능성을 밝힌 것은 아주 이례적이라고 항만업계는 본다.
해수부가 허치슨에 사실상 '협박'으로도 읽히는 카드를 빼내든 배경에는 허치슨이 운영하는 태국 람차방 항만의 터미널이 있다.
해수부는 부산항만공사를 중심으로 하는 한국형 GTO 육성과 국적선사들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태국,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국가의 주요 항만에 국적선사 전용 터미널을 확보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라고 14일 밝혔다.
해수부는 허치슨이 태국항만청에서 빌려 운영하는 람차방 터미널 2개 선석을 재임대 형식으로 우리 국적선사 전용 터미널로 제공할 것을 요구해 협상을 벌이고 있다.
임대료는 허치슨이 태국항만청과 계약한 금액이 다른 터미널보다 비싸다며 30%가량 싼 수준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성대부두 계약연장과 태국 람차방 터미널 재임대를 묶어서 주고받겠다는 협상 전략인 셈이다.
해수부 관계자는 "허치슨과 굳이 재계약하지 않아도 되지만 연장해주고 자성대부두가 재개발에 들어가는 2022년 이후에는 여건이 더 낫다고 보는 부두로 옮겨주는 만큼 허치슨도 그에 상응하는 것을 내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관계자는 "허치슨이 람차방 터미널을 내놓고 부산항에서 계속 부두를 운영하는 것이 서로 윈윈하는 방안"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허치슨은 해수부의 요구에 처음에는 강한 불만을 제기하다가 최근에는 람차방 터미널 재임대를 고려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자성대부두 계약연장에 실패하면 부산항에서 철수해야 할지 모른다는 불리한 처지에 있다는 점이 작용한 것으로 항만업계는 분석한다.
허치슨이 자성대부두와 람차방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부산항 터미널의 판도가 달라질 수 있어 항만업계는 물론 부산항에 기항하는 선사들도 촉각을 곤두세우는 가운데 해수부의 태도를 비난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신항의 한 터미널 운영사 관계자는 "국적 터미널 운영사와 선사를 육성하려는 해수부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형식과 방법에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외국에 터미널이 필요하면 공식적으로 해당 국가의 항만 당국과 협의해야지 임대 기간 만료 등으로 불리한 처지에 놓인 부산항 운영사를 압박하는 식으로 추진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한 외국계 운영사 관계자는 "해수부의 이런 행태는 외국계 운영사들에 한국 투자를 꺼리게 하는 좋지 않은 신호를 보낼 것으로 우려한다"고 말했다.
lyh9502@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