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마항쟁 때 돌 1개 던져 징역 2년…사망 후 재심서 '무죄'

입력 2018-09-13 13:28
수정 2018-09-13 16:18
부마항쟁 때 돌 1개 던져 징역 2년…사망 후 재심서 '무죄'

(부산=연합뉴스) 김선호 기자 = 최근 청와대가 폐지한 위수령이 마지막으로 발령됐던 1979년 부마항쟁 당시 가담해 돌 1개를 던져 징역형을 받은 남성이 39년 만에 재심이 받아들여져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 남성은 무죄 선고 8년 전인 2010년에 이미 숨졌다.

부산지법 형사7부(김종수 부장판사)는 부마항쟁 때 파출소에 돌 1개를 던져 군중 소요 행위에 가담한 혐의(소요죄)로 군법회의에 회부된 최모 씨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고 13일 밝혔다.

공소사실을 보면 최씨(당시 24세)는 1979년 10월 16일 부산대생 5천여 명이 유신철폐, 민주회복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민들과 함께 부산 전역에서 시위를 벌인 부마민주항쟁에 가담했다.

최씨는 이날 오후 8시 30분께 부산 초량동에 있던 중부파출소 앞에서 파출소를 향해 돌멩이 1개를 던진 혐의로 계엄보통군법회의에 회부돼 징역 2년을 선고받고 형이 확정돼 옥살이해야 했다.

최씨는 억울함을 풀지 못하고 55세인 2010년 12월에 사망했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부마항쟁이 일어나자 군 병력을 투입하는 위수령을 발령해 최씨는 일반 법원이 아닌 군법회의에 회부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4월 검찰은 이 사건에 대한 재심을 청구했고 법원이 부마민주항쟁 특별법 등에 따라 재심개시를 결정했다.



재심 재판부는 "형법이 규정한 소요죄는 공공의 평화, 안전을 해칠 수 있는 정도의 것이어야 하지만 최씨가 참여한 부마항쟁 시위는 그 정도 수준의 시위로 단정하기 어렵고 이를 인정할 근거도 없다"고 무죄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당시 부산 시민에게 유신체제에 대한 반감으로 비롯된 부마항쟁 시위의 목적과 배경에 대한 광범위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어 시위가 시민에게 심리적 불안감을 초래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부마민주항쟁은 박정희 군사정권이 1975년 5월 긴급조치 9호를 발동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허가받지 않은 학생 집회·시위 등을 금지하는 등 국민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자 부산, 마산을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발생한 유신체제 반대 시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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