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광폭 행보에 "홍영표 안 보여"…'투톱' 균형 흔들
당대표 '그립' 세지자 원내대표 존재감 축소 평가
"구심력 강화 차원서 일부러 만든 상황" 관측도
(서울=연합뉴스) 한지훈 기자 =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힘 있는 당대표' 공약을 실천에 옮기면서 상대적으로 원내 사령탑인 홍영표 원내대표의 입지가 좁아진 것 아니냐는 관측이 당 안팎에서 나온다.
이 대표가 당정청 관계의 균형추 역할을 자임하며 최대 현안인 부동산 대책부터 내년도 예산까지 직접 챙기는 가운데 홍 원내대표는 정기국회 회기로 접어든 이후에도 별다른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대표는 12일 오전 경남도청에서 열린 예산정책협의회에 참석해 현지 예산 수요를 파악하고, 정기국회를 통한 충분한 재원 확보를 약속했다.
이 대표는 지난 7일부터 전남, 세종, 충남, 경기 등에 이어 이날 경남, 부산까지 전국 시·도청을 방문, 예산정책협의회를 주재하고 있다.
인천 부평을을 지역구로 둔 홍 원내대표는 인천시와의 예산정책협의회만 주재했을 뿐이다.
민주당 한 의원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예산정책협의회나 예산 당정은 통상 원내대표가 주도해왔으나, 이례적으로 홍 원내대표 대신 이 대표가 회의를 이끌고 있다"고 했다.
다른 의원은 "원내대표는 '공식일정 없음'으로 나가는데 대표는 매일 치고 나가니까 모양새가 좀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언급했다.
이 대표는 취임 후 첫 고위 당정청 회의에서 정부에 강력한 부동산대책을 주문하고, 공공기관 지방이전 추진을 공론화하는 등 연일 주요 의제를 선점해 띄우고 있다.
8·25 전당대회 흥행이 부진한 국면에서 "이제는 원내 중심 정당이 돼서 당대표가 누가 되든 관심이 없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으나, 이 대표가 취임하자마자 그런 분석이 무색해진 분위기다.
일찍이 여야 5당 대표 회의를 제안한 이 대표는 지난 5일 문희상 국회의장 주재 회동을 통해 여야 대표들과의 '초월회' 결성과 회동 정례화를 이뤄내기도 했다.
이를 두고 한 야당 원내대표가 "국회의장은 당대표가 아닌 원내대표들과 입법 등 현안을 논의해야 하는 것"이라고 볼멘소리를 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당으로서 당정 간 원활한 정책협의와 원내 협상을 위해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을 러닝메이트로 선출해야 한다는 당내 논의도 금세 유야무야 됐다.
이 대표는 취임 일성으로 정책위의장의 유임을 깜짝 발표했고, 이후 러닝메이트제 도입에 대한 일부 요구는 "원내대표 선거 승리를 위한 안배 인사보다 당대표의 적임자 지명이 낫다"는 명분으로 사라졌다.
정책위의장과 정조위원장까지 사실상 이 대표 휘하로 들어가면서 홍 원내대표가 '그립'을 강화할 기회를 놓친 모양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홍 원내대표가 야당과의 예산·입법 전쟁에서 손에 쥘 수 있는 협상 카드도 비교적 제한적이라는 것이 주변 인사들의 평가다.
한 중진 의원은 통화에서 "홍 원내대표가 '내가 협상 기계가 된 것 같다'고 했다"며 "실탄 없이 야당과의 협상에 내몰리는 상황에 대해 답답함을 토로한 것으로 이해했다"고 전했다.
이 대표로 무게중심이 쏠리면서 당 일각에서 이른바 '홍영표 패싱'에 대한 우려까지 제기되는 반면, 홍 원내대표가 이 대표에게 일부러 더 힘을 싣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홍 원내대표가 이번 정기국회 첫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본인이 하지 않고 이 대표에게 '삼고초려'로 부탁한 것도 그런 맥락이라는 해석이다.
원내 핵심 관계자는 통화에서 "구심력 강화 차원에서 원내대표가 당대표에게 힘을 실어주는 측면이 있다"며 "두 분이 역할분담을 하면서 우선은 당 중심으로 가고, 정기국회가 무르익으면 또 원내대표의 존재감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비공개회의에서 원내 사안에 대해서는 "홍 원내대표와 상의하겠다"며 선을 긋고 즉답을 피하는 등 무리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도 있다고 당 관계자들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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