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 여성정치가 시몬 베이 추모물 훼손…경찰 수사
(파리=연합뉴스) 김용래 특파원 = 프랑스 여성인권과 유럽통합의 상징이었던 정치가 고(故) 시몬 베이를 추모하는 기념물이 파손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9일(현지시간) 프랑스 언론들에 따르면 베이와 그의 남편이 함께 안장된 파리 시내 국가위인묘역인 '팡테옹' 정문 앞에 설치된 베이의 추모현판 14개가 최근 훼손됐다.
베이의 생애와 업적을 소개하고 생전모습을 담은 현판의 베이 얼굴 부분을 누군가가 날카로운 물체로 커다랗게 'X' 자로 긁어놓은 것이다.
경찰은 유대인을 혐오하거나 페미니즘에 반대하는 자의 소행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 중이다.
작년 6월 30일 89세를 일기로 타계한 베이는 그동안 프랑스의 각종 여론조사에서 가장 존경받고 신뢰받는 여성에 꼽혀온 명사다.
1927년 니스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10대 때이던 1944년 가족들과 함께 나치의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가 부모와 오빠를 모두 수용소에서 잃었다.
베이는 아우슈비츠와 베르겐-벨젠 수용소 등을 전전하다가 자유를 찾아나선 끝에 겨우 살아서 파리로 돌아왔다.
나치의 극악무도한 박해를 피해 삶을 찾아가는 가시밭길 여정을 담은 그의 자서전 '삶'(Une vie)은 2007년 출간돼 프랑스에서 꾸준히 읽히는 스테디셀러다.
베이는 법관을 거쳐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대통령의 중도파 내각에서 보건장관으로 발탁된 뒤 1974년 낙태 합법화를 주도, 전 세계에서 '여권 진보'의 상징적 인물이 됐다.
유년시절 나치의 대학살(홀로코스트)을 피해 생존한 경험을 바탕으로 유럽의 평화 정착과 화해·통합에도 헌신했으며 1979년부터 3년간 유럽의회의 초대 선출직 의장을 지냈다.
베이는 프랑스 대통령의 결정으로 국가적 영웅에게만 허락되는 팡테옹에 안장된 다섯 번째 여성이다.
앞서 프랑스 정부는 작년 베이가 별세한 지 일주일도 안 돼 이례적으로 베이와 남편인 앙투안 베이(2013년 작고)를 함께 팡테옹에 안장하기로 하고, 장례를 국장(國葬)으로 엄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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