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줄 새는 지방곳간] ① '지방의원 쌈짓돈' 재량사업비
포괄사업·주민숙원사업 등 명목 "먹는 사람이 임자"
의원·브로커 '검은 유착'에 리베이트로 혈세 '펑펑'
일부 지방의회 자성·폐지 불구 꼼수편성 등도 여전
[※ 편집자 주 : 국회가 최근 특수활동비 폐지를 결정했습니다. 국민 혈세를 멋대로 갉아먹어 온 부조리한 관행을 자의 반, 타의 반 포기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악습이 비단 중앙 권력에만 국한된 것은 아닙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지방 곳간도 임자가 없기는 마찬가지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지방의회 의원들의 쌈짓돈 논란이 일고 있는 재량사업비, 업무추진비, 공무원 파견수당, 그리고 해마다 되풀이되는 외유성 출장 등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연합뉴스는 지방 권력의 혈세 유용 실태를 살펴보고 개선책을 모색하는 [줄줄 새는 지방 곳간] 기획기사 4편을 11일부터 14일까지 송고합니다]
(전국종합=연합뉴스) 지난해 검찰 수사를 통해 드러난 전북도의회와 전주시의회 의원들의 재량사업비 비리는 참담한 수준이었다.
전·현직 도의원 4명과 전주시의원 2명, 브로커 등 21명이 줄줄이 수사망에 걸려들었다.
의원들은 주민 숙원사업이라며 초·중·고교 교단환경 개선과 아파트 체육시설건립, 태양광 가로등 설치 등에 재량사업비를 펑펑 썼다.
◇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브로커·의원 '검은돈 커넥션'
심지어 의료용 온열기 설치와 운동기구 구매에도 '주민 숙원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버젓이 예산이 집행됐다.
발주된 사업은 전문 브로커를 통해 특정 업자들이 도맡았고 적잖은 '검은돈'이 리베이트로 건네졌다.
구속기소된 한 브로커는 "브로커가 공사 수주액의 40%를, 이 가운데 10∼15%는 의원이 먹는다"고 실토했다.
국민 혈세가 지방의원과 브로커의 주머니로 들어간 것이다.
뒷돈을 대가로 사업을 몰아줬으니 예산편성과 집행의 투명성은 애초부터 기대할 것이 없었다.
지난해에는 전남도의원이 재량사업비 공사를 알선해 주고 건설업자에게서 1천940만원을 받아 구속됐고, 2015년에는 충북 청주시의원들이 경로당에 물품을 납품한 업체에 재량사업비를 몰아준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그러나 드러난 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는 게 수사당국뿐만 아니라 지방의회 안팎의 공통된 시각이다.
◇ 의원 1인당 5천만∼5억원 편성해 제멋대로 사용
재량사업비란 각 지방의원이 희망하는 사업에 쓸 수 있도록 배정된 예산을 뜻한다.
구체적인 내용을 확정하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예산으로, '포괄 사업비'나 '주민 숙원 사업비'로도 불린다.
주로 마을길 조성, 하수관거 정비, 농로 정비 등 지방의원 지역구의 소규모 사업을 추진하는 데 쓰인다.
광역의회에서는 시·도에 따라 편차가 있지만 보통 의원 1인당 5억원, 기초의회에서는 5천만∼1억원 안팎이 편성된다.
전국적으로 환산하면 매년 수천억원에 달한다.
애초 지방자치단체장이 예산 범위 내에서 재량껏 사용하도록 편성했으나 지방의회가 출범하면서 의원들의 '쌈짓돈'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현행법상 예산의 편성과 집행 권한이 없는 의원들이 마음대로 판단해서 집행한다는 점에서 법치주의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2012년 감사원과 당시 행정자치부도 이런 이유로 자치단체들에 재량사업비 폐지를 강력히 요구했다.
감사원은 당시 "예산은 그 사업의 분야, 목적, 용도 등이 명확하게 제시되도록 편성해야 함에도 1인당 일정액씩 할당해 사업을 편성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 "재량사업비만은 포기 못 해" 편법·꼼수 속출
재량사업비는 엄격하고 투명한 과정과 절차를 거쳐 편성·집행되는 일반 예산과 달리 견제가 허술하다 보니 '유혹'에 쉽게 노출되기 마련이다.
재량사업비를 유지하기 위한 편법과 꼼수도 속출하고 있다.
경기도 양주시의원들은 재량사업비가 폐지되자 '수정 예산'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지역사업을 챙기고 있다.
집행부가 예산을 편성해 시의회에 제출하면 예산 삭감을 요구하고, 의원 자신의 사업이 반영되도록 거래하는 방식이다.
양주시의 한 관계자는 1년에 10여 건 10억∼15억원 정도의 예산이 이런 식으로 편성되고 있다고 밝혔다.
부산의 자치단체들도 공식적으로는 재량사업비를 없앴다고 하지만 예산 집행의 형식만 바뀌었지 본질은 그대로라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의원들이 선심성 사업이나 공약사업을 예산에 포함하도록 압력을 행사하고 서로 암묵적으로 이 예산안을 통과시켜준다는 것이다.
강원도의회는 암묵적·관행적으로 예산서 상에 드러나지 않게 의원 1인당 2억∼3억원씩을 배정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광주시와 광주시교육청은 재량사업비란 이름으로 지방의원을 위한 사업예산을 따로 만들지는 않지만 일부 다른 명목으로 비슷한 예산을 세우고 있다.
검찰 수사로 곤욕을 치렀던 전북도의회는 "사업 집행 내용을 공개하고 반드시 공개 입찰을 거쳐 사업을 시행하겠다"며 슬그머니 재량사업비를 다시 세우려 시도하기도 했다.
◇ "새로 선출됐으니 예산 추가로 세워"…폐지 요구 "나 몰라라"
더 큰 문제는 여전히 많은 지방의회가 안팎의 비난에도 재량사업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천시의회는 의원 1인당 학교 환경개선 사업비 1억원씩, 총 37억원을 편성할 계획이다.
전남도의회는 올해도 본예산에 '소규모 지역 개발 사업비'로 의원 1인당 5억원씩 모두 290억원을 편성해 상반기에 모두 집행했다.
전남도교육청은 본예산에 1인당 5천만원씩 29억원을 편성해 모두 사용했다.
일부 자치단체는 지난 6월 지방선거가 끝난 뒤 새로 당선된 의원들을 위해 재량사업비를 추가로 반영하기도 했다.
전남도는 최근 도의원들로부터 1인당 2억원 범위 안에서 농로 포장 등 소규모 지역 개발사업 내역을 제출받아 모두 116억원을 추경에 반영했다.
상반기 290억원을 합하면 400억원이 넘는다.
◇ 일부 지자체·의원 재량사업비 폐지…"주민참여 예산 편성해야"
시민단체뿐 아니라 지자체와 지방의회 내부에서도 재량사업비를 폐지하자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충북 청주시는 주민숙원사업 예산을 내년부터 없애기로 했다.
청주시는 앞서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시의원들에게 하반기 필요한 소규모 주민 숙원사업을 1인당 5천만원 범위 내에서 신청하라고 요청해 논란을 일으켰었다.
이선영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재량사업비로 불렸던 소규모 주민숙원사업비는 부패의 고리"라며 "주민참여 예산제를 통해 예산을 편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북도와 일선 시·군 공무원노조도 최근 기자회견을 열어 "법령이나 조례에도 근거가 없는 재량사업비는 지방의원의 재량으로 예산이 집행됨과 동시에 예산 사용처를 정할 수 있기 때문에 투명성과 공정성 확보에 한계가 있다"며 "전면 폐지하고 주민참여 예산제 등 행정절차에 근거한 제도를 활성화해 투명성을 확보하라"고 요구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박완희·유영경·윤여일·이재숙, 정의당 이현주 청주시의원은 "시의원 1인당 특정 금액을 배정하는 주민 숙원사업은 주민들의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의견수렴 과정 없이 추진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거부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 자치단체 관계자는 "필요한 곳에 예산을 써야 하는데 의원들에게 사용처도 모른 체 일률적으로 막대한 돈을 편성하는 것은 예산편성 원칙상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설령 의정활동에 어려움이 있더라도 이제는 정상적인 방법으로 편성·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도인 여운창 변지철 우영식 심규석 강종구 임보연 장영은 황봉규 이종민 최찬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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