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 프랑코 묘 이전 싸고 스페인 여론 분열
(서울=연합뉴스) 유영준 기자 = "과연 독재자의 묘역을 파헤치는 것이 옛 상처를 치유하는 최선의 방식인가?"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가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묘역을 이장키로 방침을 세우면서 스페인 국민의 여론이 크게 갈리고 있는 것으로 월스트리트저널(WSJ)이 6일 전했다.
지난 1975년 사망한 프랑코는 현재 수도 마드리드 외곽의 이른바 '전몰자 계곡'에 묻혀있으며 사회당 내각의 산체스 총리는 독재의 상흔을 지우기 위해 조만간 의회 인준을 거쳐 프랑코의 묘를 다른 곳으로 옮길 방침이다.
그러나 프랑코 묘 이전을 둘러싸고 스페인 여론이 크게 갈리고 있으며 지난 7월 국내신문 엘 문도의 조사에 따르면 묘이장 찬성이 41%, 반대가 39%로 팽팽한 것으로 나타났다.
40여 년간 묻혀있는 프랑코의 묘를 다시금 파헤쳐 그의 독재와 이전 내전의 쓰라린 역사의 상처를 다시금 대면하는 것이 최선의 치유인지를 둘러싸고 여론이 갈리고 있다고 WSJ은 전했다.
1936년 스페인에 선거를 통해 좌파 인민전선 내각이 들어서자 프랑코를 비롯한 군부는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리고 1939년까지 스페인 현대사에 최대 비극인 내전이 벌어졌다.
각국의 지식인 등이 가세한 국제의용군과 당시 스탈린 소련의 지원을 받은 정부군과, 히틀러의 나치독일과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이탈리아의 지원을 받는 반군 간에 내전은 결국 반군의 승리로 끝나고 프랑코는 이후 1975년까지 철권통치를 행사했다.
그리고 화해의 상징이라면서 마드리드 외곽에 초대형 십자가가 들어선 내전 희생자 묘역을 조성하고 결국 자신도 그곳에 묻혔다.
1975년 프랑코가 사망하자 스페인 정치지도자들은 프랑코 정권 지도자들을 단죄하거나 거창한 프랑코 묘역에 항의하는 대신 민주정부를 수립하는 데 주력했다.
이전의 좌파 정부들도 프랑코 묘 이전이라는 미묘성을 감안해 쉽사리 이전을 감행하지 못했으나 수십 년이 지난 지금 프랑코 열성 지지자들이 줄어들면서 정치적 분위기가 변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지난 6월 불신임투표를 통해 우파 정부를 붕괴시키고 집권한 산체스 총리는 의회 내 입지가 탄탄하지 못한 상황에서 좌파 진영 내 지지 확보에 부심하고 있다.
거리 표식이나 동상 등 프랑코 시대 잔재들을 제거하는 것이 좌파 유권자들에 인기를 얻고 있다.
이런 가운데 프랑코 묘를 옮기는 것이 스페인 국민의 일상생활에서 프랑코의 그림자를 지우는 가장 획기적인 조치가 될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상당수 스페인인은 프랑코의 화려한 묘역이 내전 중 공화파 정부군에 대한 반군의 승리를 미화하고 있다면서 이는 아직도 당시 희생자들의 유해를 되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전몰자 계곡에는 장엄한 프랑코 묘역과는 대조적으로 아직 많은 정부군측 희생자들이 아무런 표식도 없이 집단매장돼 있다. 따라서 유족들은 정부가 이들 '무명' 희생자들을 다시 발굴해 신원을 밝혀주기를 바라고 있다.
반면 프랑코와 스페인 파시스트운동의 창시자인 프리모 데 리베라 등의 묘역에는 아직도 주일이면 미사가 열리고 많은 추모객이 몰려와 헌화하고 있다고 WSJ은 전했다. 특히 프랑코 묘의 이전 방침이 알려지면서 평소보다 방문객이 65%나 증가하고 있다고 WSJ은 전했다.
스페인은 극우정당이 없는 유럽의 몇 안 되는 국가 가운데 하나이다. 정치적으로 현 정부의 프랑코 묘 이전을 저지할 세력이 없는 상항이다. 그러나 일반 국민은 산체스 총리의 프랑코 묘 이전에는 소극적인 입장이다.
이미 역사의 페이지가 넘어간 상황에서 다시금 과거로 돌아간다는 정부의 논리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산체스 총리에 정치적 기회주의라는 지적도 있다.
스페인 의회는 프랑코 묘 이전과 함께 전몰자 계곡에 묻혀있는 3만3천여 내전 희생자들의 처리도 검토하고 있다. 신원 확인 작업을 거쳐 유족들에게 돌려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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