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천문학자, '실리콘밸리 노벨상' 상금 33억 전액 기부키로
버넬, 브레이크스루상 수상자 선정…'펄서' 존재 밝혀내고 평생 연구
"물리학 공부하는 여성과 소수민족, 난민 등을 위한 장학금으로 기부"
(런던=연합뉴스) 박대한 특파원 = 노벨 물리학상을 아깝게 놓친 영국의 여성 천체물리학자가 미국 실리콘밸리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브레이크스루상'(Breakthrough Prize)을 받게 됐다.
이 학자는 상금 33억원 전액을 자신과 같은 여성이나 소수민족, 난민 등이 물리학을 공부하는 데 필요한 장학금으로 기부하기로 했다.
6일(현지시간) 영국 공영 BBC 방송에 따르면 영국의 조셀린 벨 버넬 옥스퍼드대 객원 교수가 올해 브레이크스루상 물리학 분야 수상자로 결정됐다.
버넬 교수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주기적으로 빠른 전파나 방사선을 방출하는 천체인 펄서(pulsars)의 존재를 밝혀내고 연구하는 데 평생을 바친 공로를 인정받았다.
버넬 교수는 오는 11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열리는 수상식에서 상과 함께 230만 파운드(한화 약 33억원)의 상금을 받을 예정이다.
세계 최대 규모 과학상인 브레이크스루상은 러시아 물리학자 출신 억만장자 유리 밀너와 구글 공동창립자 세르게이 브린, 유전자 검사업체 '23앤드미' 공동창립자 앤 워지츠키, 알리바바그룹 창립자 마윈, 페이스북 공동창립자 마크 저커버그 등이 2012년에 만들었다.
상금은 건당 300만 달러(약 230만 파운드)로 노벨상의 3배가 넘으며 심사위원회는 이전 브레이크스루상 수상자들로 구성된다.
버넬 교수는 대학원 시절 당시 전파천문학의 거두였던 안토니 휴이시 케임브리지대 명예교수의 지도를 받아 논문을 쓰면서 펄서의 존재를 최초로 발견했다.
그러나 휴이시 교수만 1974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고, 버넬은 명단에서 제외됐다.
결국 버넬 교수는 40여년이 지나 '실리콘밸리 노벨상'을 대신 받게 된 것이다.
엄청난 상금을 받았지만 버넬 교수는 이를 물리학을 공부하는 여성과 소수민족, 난민 등을 위한 장학금으로 기부하기로 했다.
스스로가 물리학계 내에서 북아일랜드 출신의 여성이라는 소수자의 위치에 있었던 만큼 물리학계 내 '무의식적인 편견'에 대응하고, 소수자들이 더 활발히 연구할 수 있도록 토대를 닦아주고 싶다는 생각에 따른 것이다.
버넬 교수는 "나는 상금을 원하지도, 나에게 필요하지도 않다"면서 "(장학금 기부가) 아마 상금을 가장 잘 사용하는 방법일 것"이라고 말했다.
교수는 자신이 소수자였기 때문에 신선한 아이디어를 갖게 됐고, 이것이 펄서의 존재를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평가했다.
그는 "나는 여성이었고, 북서 지방에서 왔는데 내 주변의 대부분은 남부 영어를 사용했다. 케임브리지에서 나는 소수였고 약간 위축됐다"고 회상했다.
이어 "소수자들은 신선한 시각으로 사물을 대하게 되고 이것은 종종 매우 생산적이다"면서 "보통 많은 돌파구가 의외의 의견이나 입장에서부터 나온다"고 설명했다.
자신에게 노벨상이 수여되지 않은 것과 관련한 논란에 대해 묻자 그는 외교적 언사로 자신의 장학금 기부가 앞으로 노벨상 내 불균형을 변화시키는 데 일조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그는 "그동안 문학상 외에는 여성 노벨상 수상자가 많이 부족했다"면서 "노벨상은 젊은 학자보다는 확고히 자리를 잡은 학자에게 수여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동안 물리학계에서는 이 수준에 있는 여성의 수가 많지 않았다"고 말했다.
BBC는 버넬 교수가 기부한 장학금이 어떻게 운영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pdhis9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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