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입견 넘어 공감으로"…미리 본 광주비엔날레 북한미술전
대형집체화·수묵화 등 22점, 7일부터 일반 공개
(광주=연합뉴스) 여운창 기자 = "북한 그림이라고 하면 낯설고 신기하다고만 얘기하는데 직접 보면 거부감 보다는 그 작품의 수준에 놀라고 모두 우리 그림 같은 느낌을 훨씬 크게 받아요."
광주비엔날레 공식 개막을 하루 앞둔 6일 오후 비엔날레 전시관 중 한 곳인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의 전시실에 관람객이 몰려들었다.
그동안 꽁꽁 베일에 가려져 있던 '북한 미술:사실주의의 패러독스'전이 프레스 오픈을 위해 잠시 문을 열자 전시실 안이 취재진과 관람객들로 금세 붐볐다.
북한 그림에 대한 선입견을 떨칠 것을 강조한 소개 글을 읽고 전시실에 들어서면 북한 그림임을 한눈에 알 수 있는 대형집체화가 단박에 눈길을 사로잡는다.
'새물길이 뻗어간다'란 제목의 이 그림은 혹한의 날씨 속에 수십 명의 노동자가 수로관 건설 작업을 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집체화는 가로 5m 세로 2m가 넘는 크기의 대형 그림으로 2명 이상의 작가가 함께 참여해 작품을 완성한다.
'새물길이 뻗어간다'도 6명의 작가가 참여해, 망치질하는 노동자·용접공·설계감리자·불도저의 모습까지 세밀하게 표현했다.
북한미술전을 기획한 미국 조지타운대 문범강 교수는 '새물길이 뻗어간다'와 함께 북한 집체화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그림으로 수력발전소 건설에 나선 노동자들을 그린 그림을 꼽았다.
문 교수는 "이 그림에는 집체화의 특징인 노동현장의 모습, 웃고 있는 다정한 얼굴들, 서로 손잡고 이끌어주는 협동하는 자세, 힘든 현장에서도 나라를 위해 일한다는 자긍심 등이 등장인물 한명 한명에 모두 잘 나타나 있다"고 설명했다.
대형집체화가 사회주의 노동현장만을 다루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그림들도 볼 수 있다.
전시실 중앙에는 임진왜란 당시 평양성 전투를 그린 대형화도 걸려 있고, 비 내리는 퇴근길 북한의 버스 정류장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작품 '소나기'에서도 국가 선전과 같은 색채를 찾아보기 힘들다.
가을날 노랗게 물든 나뭇잎을 뒤로하고 따뜻한 햇볕 아래에서 쉬고 있는 분홍색 머리띠의 어린 여학생들을 그린 '쉴 참 에'도 북한 그림인지 분간하기 힘들 정도다.
전시실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문 교수가 극찬한 북한의 수묵화를 감상할 수 있다.
금강산을 각각 그린 스승과 제자의 그림, 길이 5m의 긴 유리 상자 안에 들어 있는 '운봉집'도 눈길을 끈다.
특히 윤곽선을 그리지 않고 대상을 묘사하는 몰골법의 대가 최창호 작가의 '금강산'과 '국제전람회장에서'라는 대표작도 만날 수 있다.
호랑이 눈동자를 그리는 데에만 7시간이 걸렸다는 김철 작가의 '범'도 관람객을 사로잡을 것으로 보인다.
눈밭을 박차고 튀어나올 것 같은 '범'은 흰 눈을 표현한 부분이 종이의 질감을 그대로 활용하면서도 매우 사실감 있게 표현됐다.
북한 미술사학자인 운봉 리재현 작가의 문인화들과 운봉집도 문 교수의 '엄지척' 작품들이다.
문 교수는 "북한 미술사에서 벌어졌던 다양한 사건들을 그림 옆에 함께 적어 놨는데 사료적 가치도 매우 크다"며 "배가 고파 그림을 쌀과 바꿨다는 가슴 아픈 이야기도 실려 있다"고 전했다.
문 교수는 북한 미술을 이해하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이 선입견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북한 미술을 이데올로기적인 사회주의 미술로만 접근하면 그 실체를 제대로 볼 수 없다"며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예술적 성취도 큰 작품들이 즐비한 만큼 비엔날레 기간 많은 분이 북한 그림을 보고 즐기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북한미술전을 포함한 광주비엔날레는 7일 개막해 오는 11월 11일까지 광주비엔날레전시관과 아시아문화전당 등지에서 '상상된 경계들'을 주제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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