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이매진] "집 나갔던 며느리 돌아왔슈~"
가을 되면 진미(珍味)로 몸값 올리는 전어
(서천=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바야흐로 전어의 계절이 왔다. 전어는 가을의 또 다른 전령사다. 구수하면서도 담백한 맛과 향이 손님의 발길을 붙잡는다. 서해안과 남해안의 전어 명산지에서 전어 축제들이 줄줄이 열리는 건 그래서 당연하다고 하겠다. 지난 9월 초 대표적 전어 고장 중 하나인 충남 서천의 홍원항을 찾아 그 진미의 세계로 들어가 봤다.
'가을 전어 굽는 냄새에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
전어의 진미를 언급할 때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찬사다. 그 맛과 향이 오죽이나 고혹적이었으면 집 나갔던 며느리가 저도 모르게 발길을 돌렸을까 싶다. 가을철 전어에 대한 찬탄은 이밖에도 많다. '가을 전어 머리엔 깨가 서 말', '가을 전어를 못 먹으면 한겨울에도 가슴이 시리다' 등등. '가을 전어는 며느리가 친정 간 사이에 문을 걸어놓고 몰래 먹는다'는 말에선 익살스러운 재치마저 물씬 느껴진다.
◇ 지방질 많고 뼈도 부드러운 가을 전어
가을의 들머리인 9월 초, 전어 고장으로 꼽히는 서천의 홍원항을 찾아봤다. 식당 앞 대형 수족관에선 전어들의 멋진 군무(群舞)가 펼쳐지고 있었다. 싱싱한 은백색 햇전어들은 상하좌우로 우르르 몰려다니며 날렵한 춤사위를 한껏 뽐냈다. 포동포동 살이 올랐건만 해맑은 물속을 이리저리 잽싸게 헤엄치는 몸놀림은 무척이나 유연하고 깜찍하다. '어서 들어오시라'는 무언의 신호이자 눈짓일까.
그 사이에 식당에서 은근스레 스며 나온 전어요리 내음이 콧속을 슬금슬금 파고들었다. 진미의 유혹에 반해서인지 삼삼오오 모여든 행인들은 탄성과 함께 너나없이 식당 안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얼른 들어가자고! 여기까지 왔는데 안 먹고 그냥 가면 후회될걸! 안 그려? (웃음)"
청어목 청어과에 속하는 전어는 우리나라 해안에 두루 서식하는 연안성 어종이다. 등이 검푸른 반면에 나머지 배 부분은 은백색으로 빛난다. 수명은 3년가량. 봄(3~6월)에 산란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덩치를 키우는데 가을이 되면 몸길이가 20cm 남짓으로 성장한다. 이때가 일 년 중 지방질이 가장 많고 고기는 물론 뼈조차 무척 부드러워 구수한 맛을 만끽할 수 있다. '봄 도다리, 여름 민어, 가을 전어'라는 말이 있을 만큼 가을이 됐을 때 전어는 그 별미를 자랑하는 것이다.
전어는 예부터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두루 좋아했다고 한다. 실학자이자 농업개혁론자였던 서유구(1764~1845)는 조선 후기의 최대 농서인 '임원경제지'에서 전어를 '錢漁'로 기재하며 누구나 돈을 생각지 않고 즐겨 먹는다고 언급했다. 귀한 돈이 아깝지 않은 물고기라는 얘기다.
이처럼 전어가 예부터 주목받은 영양학적 근거는 뭘까? 전어 식당 10여 곳이 줄지어 선 홍원항에 가면 '풍부한 불포화 지방산' '비린내 없는 고소한 맛' 등의 문구를 식당 벽면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이 같은 문구처럼 전어에는 몸에 좋은 불포화 지방산이 풍부해 콜레스테롤을 낮추고 동맥경화나 고혈압 같은 성인병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됨은 물론 두뇌 발달에도 좋다고 한다.
여기다 비타민과 미네랄이 많아 피부미용과 피로 해소에 좋을 뿐만 아니라 칼슘이 많은 뼈째로 먹으면 골다공증 예방 등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 채소와 함께 먹을 경우 각종 비타민과 무기질까지 고루 섭취할 수 있단다. 홍원항 '본가' 식당의 김연자(52) 대표는 "전어의 불포화 지방산은 지방이면서도 먹으면 살이 잘 안 찌는 특성이 있다"면서 "얕은 모래펄이 유독 많은 우리 지역에서 자생하는 전어는 맛과 영양이 특히 좋아 타지방의 횟집들로부터도 주문이 많다"고 자랑했다.
◇ 구이·회·무침 '3종 세트'…잃은 입맛 살린다
이제 전어의 요리를 살펴보자. 요리는 구이와 회, 무침이 중심을 이룬다. 구이가 전어를 통째로 구워 고소한 냄새와 맛을 즐기는 것이라면, 회는 전어의 보들보들한 육질을 만끽하는 음식이다. 무침에는 전어회와 각종 야채, 그리고 양념이 두루 섞여 새콤달콤하면서도 시원한 맛을 다양하게 즐겨볼 수 있다.
먼저 전어구이다. 전어를 산 채로 급랭한 뒤 꺼내어 가스 그릴의 석쇠에 올린다. 2인용 1kg의 경우 10~12마리로 석쇠에 올려놓고 굵은 천일염을 뿌려준다. 그러고 15분가량 굽는다. 한쪽이 구워지면 뒤집어 다른 쪽을 굽는 방식. 이렇게 굽다 보면 노릇노릇한 구이가 맛깔스럽게 탄생한다. 물론 숯불로 구워주면 더욱 좋지만 요즘은 가스 그릴이 일반적이다. 구워진 전어는 양손으로 머리와 꼬리 부분을 잡고서 통째로 먹는데 내장은 물론 뼈까지 먹으면 맛이 더욱 좋다.
다음은 전어회. 비늘을 깨끗이 벗긴 다음 머리와 지느러미, 꼬리를 칼로 잘라 제거한다. 이어 내장과 등뼈도 말끔히 없앤다. 이때 중요한 것은 칼질이다. 예리한 칼로 잘게 어슷썰기를 해나가면 보들보들 식감 좋은 회가 완성된다. 상으로 내갈 때는 여기에 깨소금을 고명으로 살짝 뿌려주는데 그만큼 맛깔스러움이 더해진다. 회는 깻잎 채소에 얹어 먹으면 부드러운 고기의 맛과 신선한 야채의 맛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물론 취향에 따라 초장, 된장 등을 찍어 먹어도 된다.
전어무침은 회, 야채, 양념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새콤달콤한 맛이 일품이다. 양배추, 당근, 깻잎 등의 야채에다 초장, 참기름, 고춧가루, 식초, 소금, 설탕 등의 양념을 골고루 넣고 정성스레 무쳐주면 회와 더불어 고소하면서도 단맛 나는 음식으로 재탄생한다. 이 역시 깨소금을 뿌려주면 식감이 더해진다. 특히 무침에 밥을 얹어 비벼 먹는 회비빔밥은 '밥도둑'이라는 말이 실감 날 만큼 진미 중의 진미! 여기다 참기름을 살짝 넣은 미역국으로 깔끔하게 입가심하면 금상첨화다.
식당에서 만난 손님들은 한결같이 전어의 맛과 향에 매료된 듯 감탄사를 터뜨렸다. 친구 3명과 함께 왔다는 이화형(전주·73) 씨는 "해마다 가을이면 햇전어를 찾아 이렇게 맛여행을 한다"면서 "바닷가에서 싱싱하고 부드러운 회에다 약주까지 한 잔 걸치니 기분이 더욱 좋다"고 만족스러워했다. 서울에서 온 대학생 강윤호(26) 씨도 "원래 생선 무침을 못 먹었는데 이곳에 와서 담백하고 고소한 맛에다 육질이 부드러운 전어 무침에 흠뻑 빠져들게 됐다"며 "가족과 함께 와서 귀한 계절음식을 먹으니 만족감은 더욱 커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가을이 되면 전국 곳곳에서 전어 축제가 다투듯 열린다. 대표적인 것이 '서천 홍원항 자연산 전어·꽃게 축제'로 올해는 9월 1~16일 펼쳐졌다. 18회째인 이번 축제에서는 서해에서 갓 잡은 싱싱한 전어를 회, 구이, 무침 요리로 다양하게 맛볼 수 있었다. 이상원 홍원항마을축제추진위원장은 "폭염과 태풍, 집중호우 등으로 잃었던 입맛을 가을의 진미인 전어와 꽃게로 되찾아드리기 위해 프로그램을 다채롭게 마련했다"고 말했다. 이 밖에 득량만 율포솔밭해변에서 8월 31일부터 9월 2일까지 제14회 보성전어축제, 섬진강 망덕포구에서 9월 14일부터 16일까지 제19회 광양전어축제가 열려 가을전어의 별미를 선사했다. 이들 축제를 놓쳤다면 10월 5~7일 예정된 제10회 강진 마량미항 찰전어축제 현장을 찾아가 보면 좋겠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8년 10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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