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인력 있는 연출·섬세한 연기…영화 '죄 많은 소녀'
김의석 감독 데뷔작…인간 본성 조명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어느 날 갑자기 여고생 경민이 실종된다.
폐쇄회로(CC)TV를 통해 그와 마지막까지 함께 있던 사람이 같은 반 친구 영희(전여빈 분)임이 밝혀지자, 경찰과 경민의 부모, 담임, 학생들의 시선은 일제히 영희에게 쏠린다.
이들은 대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영희는 온몸으로 느낀다. 쏟아지는 눈 화살 끝에는 '네가 죽였지?'라는 확신에 가까운 물음이 담겨있다는 것을. "제가 그런 것이 아니다"라고 울면서 항변해보지만, 그는 이미 죄 많은 소녀가 돼 있다.
오는 13일 개봉하는 영화 '죄 많은 소녀'는 한 여고생의 실종 이후 가해자로 지목된 소녀와 그 주변인들의 심리와 행동을 세밀한 터치로 따라간다.
극에는 다양한 인간군상이 나온다.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려는 소녀를 비롯해 사건을 빨리 해결하려는 경찰, 공부 잘하던 착한 딸의 죽음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엄마, 어떻게든 학교에 피해가 덜 가도록 상황을 정리하고 싶은 담임, 말 한마디에 쉽게 휩쓸리는 반 친구들까지.
이들은 딱히 선인과 악인으로 나누기 어려운 평범한 사람들이다. 갑자기 벌어진 큰 사건을 대하는 태도는 제각각이지만, 한가지 공통점은 있다. 각자 마음의 짐을 덜어내려 행동한다는 점이다. 내심 소녀의 죽음에 자신 탓도 있다고 여기지만, 인정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기억을 왜곡하고 거짓말을 하고, 책임을 전가할 희생양을 찾는다. 영화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고통 앞에서 한없이 나약하고, 결국 자기 자신을 가장 먼저 생각하는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을 파헤친다.
딸이 왜 죽었는지 알고 싶어 영희 곁을 맴도는 엄마나 손녀의 죽음을 비통해하며 장례식장에서 천도재를 지내는 할머니 역시 사실은 스스로 위안받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서사는 예측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영희는 자신의 결백을 보여주려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다. 끊임없이 이야기가 파생된다. 자칫 산만하게 보일 수 있는 여러 갈래 이야기를 끝까지 흡인력 있게 끌고 가는 연출력이 돋보인다.
이 작품이 장편 데뷔작인 김의석 감독은 자전적 경험을 토대로 시나리오를 썼다고 한다. 그는 "소중한 친구를 잃은 뒤 상실감이 컸다. (친구가 죽음을) 스스로 선택했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알고 있지만 아무도 인정하려 하지 않았고, 그때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그 과정에서 인간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며 "제가 사랑했던 친구인데도, 그를 완벽하게 옹호하지 못하고 제 변호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 역시 비열하고 치졸한 방식으로 살고 있다고 느꼈다. 이 작품은 허구이지만, 그때 그 감정을 캐릭터들에 쪼개서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화는 관객이 원하는 답을 속 시원히 주지는 않는다. 경민이 왜 죽었는지, 영희는 어떻게 됐는지는 결국 관객의 상상에 맡긴다. 심정적으로는 이해가 가지만, 물음표가 남는 대목도 있다. 경민 엄마 역을 맡은 중견 배우 서영화도 "캐릭터가 논리적이지는 않지만, 감각적으로 이해가 됐다"고 했다.
카메라의 시선은 등장인물들과 한발 떨어져 있다. 어느 한 인물에 감정을 이입하기보다는 골고루 시선을 나눠주며 각 인물의 입장을 생각해보게 한다. 절망과 자살 충동에 사로잡힌 사춘기 여고생들의 미묘한 심리를 비롯해 세대 간 단절, 학교 폭력 등 현 세태도 담는다.
영희를 연기한 신예 전여빈은 '올해의 발견'이라 할 만하다. 복잡하고 다양한 감정의 층위를 신인답지 않게 연기했다. 지난해 부산영화제 뉴 커런츠 상, 올해의 배우상을 받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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