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서 이국적 정취 더해주던 워싱턴야자 애물단지 전락
강풍에 부러져 시민 안전 위협…정전 사태 원인 되기도
(제주=연합뉴스) 박지호 기자 = 제주국제공항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오는 훤칠한 나무가 있다. 바로 20m 이상 성장한 워싱턴야자다. 남국의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워싱턴야자는 도시계획도로 건설이 이뤄지던 1993년 도내 주요 도로와 관광지에 심어져 관광지로서의 이미지를 더해주는 역할을 해왔다.
그런 워싱턴야자가 최근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있다. 무슨 이유일까.
미국 캘리포니아 남부와 애리조나주 등이 원산지인 이 나무는 25m 이상까지도 자란다. 25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제주 곳곳에 심어진 워싱턴 야자들도 20m를 훌쩍 넘는 크기로 자랐다.
바람에 대한 저항성이 아주 강한 편에 속하는 수종으로 알려져 있지만, 제주의 거센 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부러지는 일이 속출해 안전상의 문제가 제기되는 등 가로수로서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이 힘을 얻어가고 있다.
제주시와 서귀포시엔 가로수로 워싱턴야자가 각각 1천300여그루, 2천200여그루가 있다. 최근 제주를 강타한 제19호 태풍 '솔릭'의 영향으로 서귀포시 중문관광단지에서만 높이 20m 이상 워싱턴 야자수 95그루가 부러졌다.
부러진 나무가 전신주와 전선을 덮치면서 정전 사태도 빈번하게 일어났다. 최근 5년간 10건 이상의 정전 사고가 워싱턴야자 때문에 발생했다.
지난 3일에는 제주시 연동의 한 건물 옆 야자수 이식 작업 도중 나무가 도로로 쓰러지면서 지나가던 차량을 덮치기도 했다.
행정당국과 한전은 단전이나 전기화재 등 전기 안전사고를 예방하고 도시미관을 개선하기 위해 배전선로에 근접한 워싱턴야자 가로수 이식사업을 지난해부터 진행하고 있다. 대체 수종은 4계절 내내 푸른 상록활엽수종인 먼나무다.
수년 전부터 이상기온으로 인한 한파가 제주에 몰아치기 시작하면서 냉해로 인한 워싱턴야자 고사도 크게 증가하는 추세여서 또 다른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기온이 영하 5도 이하로 떨어지는 등 기록적인 한파가 몰아쳤던 2016년의 경우 제주시에서만 워싱턴야자 20여 그루가 고사했다. 생장점이 하나인 야자수의 경우 냉해를 입어 자라지 못할 경우 곧바로 고사하게 된다.
행정당국이 워싱턴야자 수천 그루를 대상으로 가지치기와 비료주기 등으로 관리에 나섰지만 냉해 피해를 막진 못했다.
제주 고유의 정체성과 맞지 않는 가로수라는 세간의 지적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이모(41·여)씨는 "관광지로서 이국적인 느낌을 주기 위해 제주에 야자수를 심었다지만, 도시 미관과 안전에 그다지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며 "제주 정서와 환경에 맞는 고유 수종으로 대체하는 것이 여러모로 좋겠다"고 말했다.
jiho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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