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사람도 아는 '재벌 저격수' 별명 바꾸고 싶은 김상조

입력 2018-09-02 06:01
외국사람도 아는 '재벌 저격수' 별명 바꾸고 싶은 김상조

"합리적 경제민주화 추진한다는 측면에서 새 별명 있었으면"

"한 번의 선거로 후퇴하지 않을 지속 가능한 토대 만들 것"

(서울=연합뉴스) 이대희 기자 =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작년 6월 공정거래위원회 수장에 취임하고서 임기 3년 반환점을 코앞에 두고 있다.

하지만 그의 이름 앞에는 여전히 시민단체 시절 얻은 '재벌 저격수'라는 별명이 따라다닌다.

지난달 31일 서울 중구 한국 한국공정거래조정원에서 만난 김 위원장은 새로운 별명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넉살 좋게 웃었다.



"이제는 국제회의에 참석해도 외국 사람이 다 제 별명을 알고 있어요. 해외 언론에도 다 나서 'Chaebol Sniper'라고 불리고 있어요.(웃음)"

이 별명은 김 위원장이 1999년 참여연대 재벌개혁감시단장을 맡아 시민단체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이래 근 20년 동안 이뤄낸 성과를 한마디로 요약하는 말이다.

소액주주운동, 재벌의 편법·불법상속, 전근대적 지배구조, 내부거래 등 문제를 학계가 아닌 현장에서 꾸준히 제기하며 받은 '훈장'이다.

그럼에도 김 위원장이 새로운 별명이 있었으면 한다고 생각하는 배경에는 그가 해나가는 일이 재벌 저격수라는 범위를 크게 넘어서기 때문이다.

"재벌 저격수라는 별명이 제 생각이나 활동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 것이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경제민주화, 재벌개혁을 합리적으로 추진한다는 측면에서 그에 걸맞은 별명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김 위원장은 농담처럼 말했지만, 이 이미지에 가려 그가 이끈 공정위가 달성한 성과가 가려지는 역효과가 나타나기도 했다.

공정위는 갑을관계 분야 제도 개선과 소비자 분야의 법 집행을 통해 일상생활에서 체감할 수 있는 개선을 끌어냈다.



가맹본부가 가맹점주의 영업지역을 일방적으로 줄이거나 변경할 수 없도록 금지하거나, 불합리하게 하도급대금을 주지 않았을 때 조정을 신청할 수 있는 요건을 확대하는 등 '갑질'을 막을 제도 개선에 힘썼다.

게임 사이트에서 '뽑기'형 아이템을 판매하면서 확률을 조작하거나, 공기청정기 성능을 과장 광고하는 행위, 숙소 예약 사이트에서 환불 조항을 넣지 않은 약관 등을 적발했다.

일상생활에서 체감할 수 있는 영역에서도 김상조호(號) 공정위의 성과가 나타났지만, 상대적으로 묻혔다.

김 위원장이 최근 발표한 공정거래법 전부 개편안과 관련해 "개정작업의 핵심은 기업집단법제 개편이 아니라 경쟁법제와 절차법제 개선"이라고 평가하고 있음에도 세간의 관심은 재벌 규제 조항에 집중된 점도 이런 이유에서 설명할 수 있다.



김 위원장의 이미지 탓에 재벌개혁에 있어서도 '오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재벌 규제 정책을 발표할 때마다 재계에서는 '쉴 새 없이 옥죈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반대로 소통을 통해 재벌의 자발적인 개선을 촉구하는 '포지티브 캠페인' 전략을 사용하면 '친정'인 시민단체에서 비판했다. 심지어 '변절'이라는 단어까지 나올 정도다.

김 위원장은 공정거래법 전부 개편안이 외부에 공개되기 전에도 "'너무 기업을 옥죈다', '너무 약하다'와 같은 상반된 비판이 제기될 것"이라고 예상했으며 실제로 그랬다.

"시민단체에서는 김상조 공정위가 왜 자꾸 포지티브 캠페인만 하냐고 하는데 절대 오해입니다. 첫째, 현행법의 공정한 집행으로 미래 방향성을 제시하고 둘째, 그 방향에 자율적으로 부응해줬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이 측면이 기업에도 코스트(비용)가 더 적은 방식이라는 것을 알리는 것이 포지티브 캠페인입니다. 그것으로도 안 되면 필요 최소한 범위 안에서 법 제도를 보완하겠다는 것. 이 세 가지 접근 수단을 일관되게 결합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렇듯 김 위원장은 평소 '일관' 혹은 '지속 가능한', '비가역적(되돌릴 수 없는)'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

이는 그가 취임 직후부터 임기 마지막까지 추진할 방향을 담은 로드맵을 통해서도 읽을 수 있다.

그는 임기 1년 차에 행정부의 행정력으로 추진할 수 있는 일, 2년 차에 국민적 공감대가 확립됐지만 법률 개정이나 예산이 필요한 일, 3년 차에 필요하지만 국민적 공감대가 강하지 않은 일에 각각 집중하겠다고 이미 취임 초기 공언했다.

이러한 로드맵에 맞춰 김 위원장은 1년 차에 갑을관계 해소에 집중했으며 현재 2년 차에는 38년 만에 처음으로 공정거래법 전부 개편안을 완성해 입법 예고했다. 3년 차인 내년에는 공기업 불공정행위 바로잡기에 나설 방침이다.



김 위원장이 재계나 시민단체 양측의 비판에도 이렇듯 '마이 웨이'를 가는 것은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성과 내기 위해서다.

"한 번의 선거로 후퇴하지 않을 지속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고민의 폭과 깊이가 넓어지고 깊어져야 합니다. 저와 공정위는 재벌개혁을 지속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리고 한국 경제의 새로운 경제 질서 생태계를 만들 수 있도록 추진할 생각입니다."

2vs2@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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