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 투명치과 피해자 남은 신용카드 할부금 안내도 된다
공정위, '항변권' 행사 가능 판단…남은 할부금 총 27억원 안 내도 돼
(세종=연합뉴스) 이대희 기자 = 서울 압구정 투명치과의원 피해자 중 선금을 신용카드 할부로 결제한 이들이 총 27억원에 달하는 남은 할부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 치과에서 할부 결제를 한 피해자가 신용카드사에 '항변권'을 행사하면 남은 할부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고 2일 밝혔다.
항변권이란 할부거래법에 규정된 소비자의 권리 중 하나로 계약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경우 할부 잔액을 내지 않아도 되는 권리다.
항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요건은 ▲ 계약 불성립·무효 ▲ 계약 취소·해제·해지 ▲ 재화 등이 소비자에게 공급되지 않았을 때 ▲ 채무불이행 등으로 규정돼 있다.
공정위는 최근 발생한 투명치과의원 사건 피해자는 항변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판단을 내렸다. 다만 반드시 신용카드사에 연락해 직접 행사해야 한다.
서울 압구정동 소재 투명치과가 자칭 '이벤트 치과'라며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교정비를 선불로 받으며 불거졌다.
'묻지마 영업'으로 수용 능력을 초과해 환자를 받았다가 지난 5월 인력 부족 등으로 치료를 사실상 중단하면서 무더기 피해자가 생겼다.
이런 일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투명치과는 오히려 일부 시설을 폐쇄하고 선착순으로 환자를 받는다고 선언했다. 어떻게든 치료를 받으려는 이들이 병원 앞에서 노숙까지 하면서 사건은 더 확대됐다.
결국 수백명의 고소장을 접수한 경찰은 사기 혐의로 원장 강모씨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는 등 형사처벌 절차가 진행 중이다.
하지만 피해자가 수천명에 달하기 때문에 선불금 등 피해 구제는 신속히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일부 피해자는 개인적으로 항변권을 행사하려 했지만, 신용카드사는 투명치과에서 어떠한 형태로든 진료를 지속하고 있기에 항변권을 인정할 명백한 사유가 어렵다고 판단했다.
물론 신용카드사도 문제점을 인식하고 할부금 청구를 유예하는 등 소비자 보호 조치를 했지만, 항변권 수용은 곤란하다는 입장이었다.
이에 공정위는 피해자 면담과 신용카드사 간담회를 열어 피해 구제 방법을 논의했다.
결국 지난 27일 한국소비자원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가 투명치과의 채무불이행 책임을 인정함에 따라 신용카드사도 항변권을 수용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신용카드사에 항변권을 행사하면 남은 할부금을 더는 내지 않아도 된다. 잔여 금액은 총 27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공정위는 추산했다.
신용카드사는 이 잔여 할부액에 이미 피해자들이 납부한 약 45억원을 합친 72억원을 원장 강씨에게 구상금으로 청구하게 된다.
원장 강씨는 수사기관에서 재산이 없다고 진술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카드사가 돈을 돌려받게 된다면 이미 납부한 할부금도 돌려받을 수 있다고 공정위는 전했다.
공정위는 투명치과에 대해 할부거래법에 따른 계약서 발급 의무를 위반했다고 판단, 이 행위가 과태료 부과 대상이라는 점을 서울 강남구청에 통보했다.
투명치과가 발급한 계약서에는 진료 시기와 방법, 총 소요 비용 등 계약 세부 내용이 전혀 포함되지 않은 사실이 적발됐다.
홍정석 공정위 할부거래과장은 "소비자는 할부계약 때 할부거래법에 따라 계약서가 작성됐는지를 확인하고 이 계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적극적으로 항변권을 행사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다만 소비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항변권을 남용하면 지급 거절 할부금을 한꺼번에 내야 하고 지연이자 등 추가 부담이 생길 수도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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