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10년] ③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 지구촌 흔든다

입력 2018-09-09 05:45
[금융위기 10년] ③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 지구촌 흔든다

'美우선주의' 동맹·우방도 없다…무역전쟁→'퍼펙트스톰' 우려

외교·안보-글로벌 어젠다에서도 충돌…미, 글로벌 리더십 훼손



(뉴욕=연합뉴스) 이귀원 특파원 = 글로벌 금융위기 10년, 세계는 또 하나의 거대한 도전에 직면했다.

2008년 미국 리먼 브러더스 사태로 촉발됐던 글로벌 금융위기의 상흔을 상당 부분 치유하며 새로운 도약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아메리카 퍼스트', 미국 우선주의라는 복병을 만났기 때문이다.

보호무역을 전면에 내세운 트럼프 행정부가 자국의 이익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관세 폭탄'을 쏘아대면서 지구촌은 이미 거대한 무역전쟁의 화염에 휩싸였다.

트럼프 행정부는 무역, 경제를 넘어 외교·안보는 물론 기후변화 등 글로벌 어젠다에서도 기존의 합의나 동맹·우방에 대한 배려는 안중에도 없다.

오로지 자국의 이익만을 최우선시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자신이 중심이 돼서 구축해온 글로벌 가치와 무역-외교·안보를 비롯한 국제질서가 크게 위협받고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특히 '트럼피즘'(트럼프주의)이라고 불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에는 특유의 '마이 웨이' 기질에다 오는 2020년 '재선 성공'이라는 정치적 야심까지 담겨있어 지구촌의 흔들림은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주의는 지구촌 곳곳에서 극우 또는 포퓰리즘적 성향의 지도자나 정당의 잉태를 확대 재생산하는 빌미로도 작용하고 있고, 각국의 '각자도생'을 부추길 것으로 보인다.



◇ "미국 이익 위해서라면 동맹·우방도 없다"…전방위 확전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대선 후보 시절부터 미국 우선주의를 예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면서 빼앗긴 일자리 되찾아오기와 무역적자 해소 등을 대선 공약으로 내걸고 '러스트 벨트'(Rust Belt)와 '팜 벨트'(Farm Belt) 등 중하층 백인 유권자들을 공략, 대권을 거머쥐는 데 성공했다.

상당수 전문가는 '제도권'에 들어오면 현실을 인정하고 달라질 것이라고 점치기도 했지만 '길들지 않은'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우선주의의 '칼'을 휘두르며 거침이 없었다.

감세혜택 및 재정지출 확대 등에 따른 미국의 탄탄한 고용시장과 견조한 경제성장세도 세계를 상대로 무역전쟁을 벌이는 든든한 배경이 됐다.

트럼프 행정부는 삼성·LG 등 외국산 세탁기와 태양광패널에 대해 16년 만에 세이프가드 (긴급수입제한 조치)를 발동했다.

사실상 잊혔던 '무역확장법 제232조'의 국가안보 수입규제 조항을 17년 만에 카드로 꺼내 수입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해서도 각각 25%와 10%의 관세를 부과했다. 중국 러시아는 물론 유럽연합(EU)과 캐나다 멕시코 등 미국의 전통적 우방들도 칼날을 피해가지 못했다. 상대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텃밭'인 러스트 벨트와 팜 벨트를 겨냥한 보복관세로 대응했다.

우방인 EU에 대해서도 자동차 고율 관세를 위협해 양보를 얻어냈고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ㆍ나프타) 당사국도 몰아붙여 멕시코와 협상을 타결한 뒤 이를 토대로 캐나다를 압박하고 있다.

미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서도 재개정을 요구해 협상을 타결지었으며 이달 열리는 유엔총회 기간에 서명할 것으로 전망된다.





◇ 미중 무역전쟁이 관건…장기화 땐 세계 경제 충격

전문가들은 미국이 EU 등 동맹국들과는 협상을 통해 새로운 합의에 이를 가능성을 점치고 있지만, 중국과의 치고받기는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미국은 대규모 무역적자 해소, 중국의 지적재산권 도용 금지 및 첨단기술 이전 강요 중단 등을 요구하고 있고, 이는 미국을 제치고 초강대국으로 올라선다는 '중국몽'(中國夢) 실현을 위한 중국의 첨단 분야 육성 정책 '중국 제조 2025'와 상당 부분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1, 2위 무역국인 미중은 이미 500억 달러 규모의 상대 제품에 대해 관세 폭탄을 주고받은 데 이어 미국은 2천억 달러 규모의 중국 제품에 대한 '강펀치'를 준비 중이다.

지난해 미국의 대중 수출액은 1천304억 달러, 중국의 대미 수출액은 5천56억 달러인 점을 감안하면 2천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 폭탄 강행 시 중국의 대미 수출액 절반에 이르는 제품에 대해 관세를 부과하는 셈이다.

미중간 환율 전쟁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오는 10월 미국이 환율 보고서에서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11월 중간선거, 더 길게는 오는 2020년 미 대선까지는 뚜렷한 성과를 내야 하는 상황이고, 중국이 이를 간파하고 버티기에 나설 가능성도 있어 미중 무역전쟁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무역전쟁이 장기화하면 할수록 미중 양국은 물론, 중간에 낀 세계 경제도 피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경고가 나온다.

국제신용평가회사 피치는 미국의 수입차에 대한 25% 관세부과와 2천억 달러 중국산 제품에 대한 10%의 관세 부과시 최대 2조 달러의 글로벌 교역량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경제컨설팅회사 'SS 이코노믹스'의 손성원(캘리포니아주립대 석좌교수) 대표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현시점에서 당장 큰 충격은 없지만, 특히 미중간에 무역전쟁이 장기화할수록 일자리와 물가에 영향을 미치며 세계 경제에 큰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면서 "빨리 끝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구스틴 카르스텐스 국제결제은행(BIS) 사무총장은 최근 "보호무역주의가 일련의 부정적 결과들을 낳을 수 있고 이런 것들이 합친다면 우리는 퍼펙트 스톰을 맞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 국제합의 파기, 외교안보·글로벌 어젠다도 위기…미 리더십 훼손

트럼프 행정부의 미 우선주의는 경제 영역을 넘어 외교·안보, 글로벌 어젠다까지 휩쓸고 있다.

과거 미 행정부가 동맹국과 경제적 이해를 놓고 다투면서도 다른 사안에 대해서는 전선을 분리, 동맹과의 공동의 이해 속에서 협력을 모색했다면 트럼프 행정부는 분명히 다른 색채를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취임 직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파리 기후변화협정'을 잇따라 탈퇴했다.

지난해 10월 유네스코(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 회원국 자격을 버린 데 이어 지난 6월에는 유엔인권이사회(UNHRC)에서도 탈퇴했다.

동맹국들의 끊임없는 만류에도 지난 5월에는 2015년 7월 이란과 5개 안보리 상임이사국 및 독일이 타결했던 이란 핵 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에서도 탈퇴하고 이란에 대한 제재를 복원했다.

지난 6월 캐나다 퀘벡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는 폐막과 함께 보호무역주의와 관세 장벽을 배격한다는 내용의 공동성명이 발표됐지만 북미정상회담 참석차 먼저 G7 정상회의를 떠난 트럼프 대통령이 전용기 안에서 트위터로 공동성명을 승인한 적이 없다고 주장, 채택이 사실상 불발되는 등 극심한 내홍의 민낯을 드러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블룸버그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세계무역기구(WTO)에 대해서도 "그들(WTO)이 태도를 개선하지 않으면 탈퇴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주의는 결국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을 훼손하고 있으며, 미국과 패권경쟁을 벌이는 중국이 입지를 강화하는 발판을 제공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FT) 칼럼니스트 마틴 울프는 지난 7월 초 트럼프 대통령이 전후 세계 질서를 형성한 미국인들을 알지 못할 뿐 아니라 동맹보다 거래를, 다자주의보다 양자 관계를, 일관성보다 예측 불가성을, 그리고 규칙보다 권력을 신봉하고 있다면서 편협한 거래식 접근으로 재앙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lkw77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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