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모든 것이 소중했던 340일 우주체류기
신간 '인듀어런스'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 우리는 손에 쥐거나 발아래 딛고 서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할 때가 대부분이다.
잃거나 떠나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게 된다. 그것이 정말 소중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1년간 지구를 떠나 우주에서 지내다 돌아온 스콧 켈리는 지구의 모든 것이 소중하고 그리웠다고 한다. 심지어 중력까지.
340일간 국제우주정거장(ISS)에 머물러 우주체류 미국인 최장기록을 세운 스콧 켈리의 자전적 에세이 '인듀어런스'(출판사 클)는 신비한 우주에 대한 외경만큼이나 평범한 일상의 특별함을 일깨운다.
그는 장기간의 우주비행이 인체에 일으키는 변화를 알아보기 위한 실험대상으로서 2015년 3월부터 2016년 3월까지 시속 2만8천㎞ 속도로 지구 둘레를 도는 금속 통인 ISS에서 14명의 대원과 함께 생활했다.
우주에선 일상의 모든 것이 특별해진다.
무중력 상태에 장기간 노출될 경우엔 뼈에서 칼슘이 빠져나가고 근육이 소실되기 때문에 운동은 필수다. 운동을 할 때는 멜빵을 찬 다음 러닝머신의 로프에 연결해야만 한다. 안 그러면 몸이 어디로 날아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우주식으로 포장된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말라붙은 땀 조각을 물티슈로 수습하고, 수건으로 물기를 훔치는 것으로 샤워를 대신한다.
소변을 볼 때도 늘 조심하는데 잘못하면 방울방울 새서 날아다니는 데다 식수를 제공하는 소중한 자원이기 때문이다.
ISS에선 미국과 러시아 우주인이 나뉘어 생활하는데 미국 쪽은 보급선을 통해 식수를 자주 공급받을 필요가 없었다. 러시아 측에 태양전지판에서 생산된 전기를 나눠주고 대신 그들이 눈 오줌을 공급받아 물로 만들어 마셨기 때문이다.
SF 영화에서의 낭만적인 우주유영과 달리 실제로는 우주 밖으로 나가는 것이 우주인의 임무 중 가장 위험한 일로 꼽힌다. 저자는 1년 동안 단 두 차례가 전부였다고 한다.
그밖에도 우주 생활에서는 작은 실수로 생사가 오가는 상황이 비일비재하다. 책은 한순간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우주 생활의 긴박함을 생생하게 전한다.
우주인이 되기까지 저자의 삶도 흥미진진하다. 천성적으로 위험한 모험을 즐기고 공부에는 취미가 없던 저자가 열등생에서 베테랑 우주인이 되기까지 과정은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우주 비행 초기의 우주인에게는 조종술이 무엇보다 중요했지만 21세기 우주인에게 필요한 자질은 다양한 작업을 수행하는 능력과 사람들과 잘 지내는 능력이라고 한다. 훈련받은 우주인들조차 수인한도를 넘어서는 환경 속에서 장기간 지내다 보면 우울증 같은 정신질환을 보이거나 조직 생활에 문제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책은 오랜 고립이 인간에게 미치는 심리적, 사회적 영향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저자는 우주에서 언론 인터뷰를 할 때 지구의 무엇이 그리우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고 한다.
"나는 요리가 그립다. 신선한 재료를 써는 느낌이, 채소 썰 때 나는 냄새가 그립다. 씻지 않은 과일 향기가 그립다. 신선한 농작물이 수북이 쌓여 있는 마트 풍경이 그립다. 원색의 진열대, 매끄러운 타일 바닥, 통로를 오가는 사람들이 그립다. 사람이 그립다. 모르는 사람을 만나 친해지는 것이 그립다. … 방이 그립다. 문과 문틀이 그립고, 오래된 건물의 마룻바닥 삐걱거리는 소리가 그립다. … 온종일 중력에 버티다가 쓰러져 쉬는 느낌이 그립다. 종이 바스락거리는 소리, 책장 넘기는 소기가 그립다. 음료를 잔에 따라 마시는 것이 그립다. … 등 뒤에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 얼굴에 비치는 따스한 햇살이 그립다. 샤워가 그립다. …"
홍한결 옮김. 508쪽. 2만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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