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기흥 체육회장, IOC에 "남북 스포츠 교류에 융통성 보여달라"

입력 2018-08-31 07:30
[인터뷰] 이기흥 체육회장, IOC에 "남북 스포츠 교류에 융통성 보여달라"

"성적 부진은 예견된 일…학교 체육 활성화로 엘리트 선수 확충 '패러다임' 변화 필요

아시안게임 금메달 병역 혜택은 필요…국제대회 성적에 따른 '포인트 마일리지' 검토



(자카르타=연합뉴스) 장현구 기자 =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은 2020년 도쿄올림픽에서도 남북 단일팀을 꾸리려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며 스포츠 분야에서 남북교류가 잘 이뤄지도록 융통성을 발휘해달라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에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이기흥 회장은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이 열린 인도네시아에서 대회 기간 대한민국 선수단을 격려하고 북측 체육 인사와 교류·협력 강화를 위해 힘썼다. 27일 잠시 한국으로 갔다가 청와대를 예방한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과 함께 30일 다시 인도네시아로 돌아와 9월 2일 폐회식에 참석한다.

이 회장은 우리나라가 아시안게임 6회 대회 연속 2위 수성에 실패한 것을 두고 "예견된 일"이라며 이젠 학교 체육 활성화를 통한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에 따른 병역 혜택과 관련해 찬반여론이 분출하는 것을 두고 이 회장은 선수의 국제대회 성적과 연동하는 '포인트 마일리지' 제도 도입을 검토해볼 수 있다고 했다.

다음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코리아 하우스에서 한 이 회장과의 문답이다.

-- 카누 용선 남북 단일팀의 금메달을 직접 시상했다. 기분이 어땠나.

▲ 뭉클했다. 훈련 시간이 약 20일로 짧았고, 전문적으로 용선을 한 선수들이 아니었는데도 금메달을 따냈다.

출발선에서 보는데 느낌이 왔다. 패들을 사용하는 방법을 남북 선수들이 아주 정확하게 배웠더라. 처음과 끝이 동일하게 노를 저을 때 지구력이 필요한데 단일팀 선수들이 독기를 품은 것 같다. 민족 동질감, 원 팀(One Team) 이런 게 작용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 1998년 방콕 대회 이래 6회 연속 종합 2위 수성에 도전했으나 어렵게 됐다. 2020년 도쿄하계올림픽을 앞두고 한국 체육에 빨간 불이 켜졌다는 의견이 많다.

▲ 우리나라의 성적은 예견됐다. 세계선수권대회 등에서 나온 우리 선수와 일본 선수의 기록과 성적을 종목별로 비교했기에 일본 선수들의 실력을 잘 안다.

성적 부진의 원인은 크게 3가지다.

첫째 종목별로 우리 선수들은 교체기에 있다. 우리나라를 대표해 그간 많은 메달을 땄던 이용대(배드민턴) 등이 국가대표에서 은퇴했고, 박태환(수영), 진종오(사격), 남현희(펜싱) 등도 은퇴의 길을 밟고 있다.

이들의 뒤를 이을 후보들이 빈약한 실정이다. 이에 반해 일본은 투자를 많이 했다.

그간 생활 체육에 집중했다가 방향을 전환해 엘리트 쪽으로 20년 가까이 투자한 결과가 나타났다. 우리나라에 방콕 아시안게임 이후 2위를 빼앗긴 뒤 일본이 정신을 차린 것 같다. 양궁, 태권도 등 우리의 강세 종목이 전반적으로 공격을 받는 처지라 수성이 쉽지 않다.

두 번째론 우리나라 지도자들이 다른 나라의 지도자로 활약하면서 기술이 평준화했다. 우리만의 특징이 다 노출됐다. 태권도, 양궁, 펜싱, 배드민턴, 축구의 사례가 그렇다.

마지막으로 중국이 육상, 수영 등 기초 종목에서 일본에 메달을 많이 빼앗겼다. 상대적으로 중국이 금메달을 많이 따지 못한 게 우리의 부진으로 연결됐다.



-- 도쿄올림픽이 2년 앞으로 다가왔는데 부진을 만회할 방안은 있나.

▲ 투트랙으로 가야 한다. 당면한 도쿄올림픽에선 전략적으로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귀국하면 올림픽에 대비해 선수 훈련, 교육, 전지훈련, 장비 현대화 등 시스템 전반을 검토할 예정이다.

아울러 이젠 기본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학교에서 운동을 안 하다 보니 엘리트 선수로 유입이 안 된다.

학교 체육과 스포츠 클럽을 활성화해 생활 체육과 연계하고 이런 토대에서 엘리트 선수를 공급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현재 5천800개 학교에서 활동 중인 체육인이 2천100명에 불과하다. 월급을 적게 주더라도 '스포츠 지도자'로 이들을 정규직화해 1만5천 명 수준으로 늘려야 한다. 스포츠 지도자들이 스포츠 클럽 2개씩만 운영해도 3만 개가 생긴다.

민족사관고등학교에서 체육 활동을 30분 늘렸더니 학업 성취도가 향상됐다는 얘기를 들었다. 또 스포츠 활동을 하면 일탈할 가능성도 준다는 외국 사례도 있다.

스포츠 클럽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도록 스포츠토토 진흥금을 10년간 장기 투자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체육회의 완전한 재정 자립을 이루는 '어젠다 2020' 실현을 위해 가을께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 입법 발의를 할 예정이다. 현재 광역지방자치단체장 9명과 국회의원 29명을 포함해 220만1천520명이 서명했다.

-- 평창동계올림픽, 아시안게임을 거치며 북측과 유대는 얼마나 강화했나.

▲ 지난 1월부터 김일국 북한 체육상과 계속 만나면서 속내를 어느 정도 얘기할 수 있는 사이가 됐다. 다음달 창원 세계사격선수권대회 등 앞으로도 북측과 접촉할 기회가 많이 남았다.

북측은 이미 우리와 체육 교류할 준비가 됐고, 우리도 준비됐다. 북측이 진정성을 보여줬다.

다만, 유엔 대북제재가 걸림돌이다. 그런데도 스포츠 분야에선 정치와 이념을 떠나 융통성을 발휘해달라고 국제 사회에 요청한다.

도쿄올림픽에서 단일팀을 구성하려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선수들이 함께 훈련하려면 기구도 같은 걸 써야 한다.

북측 선수들이 현대화한 장비를 사용할 수 있도록 전향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인도적 교류 협력 차원에서 바흐 IOC 위원장과 셰이크 아흐마드 알사바 OCA 의장에게도 건의할 참이다.

(이 회장과의 인터뷰에 앞서 김광철 북한카누협회 서기장은 27일 남북 단일팀 기자회견에서 "제가 하고 싶은 소리는 아직도 미국과 유엔이 평화와 친선을 바라는 세계 인민들의 지향과 어긋나게 제재를 강화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때문에 저는 하루빨리 우리 체육 부문에 대한 제재를 시급히 끝장내주셨으면 한다"고 했다.

이 회장은 김 서기장의 발언에 호응했다.)

오는 10월 전북 익산에서 열리는 전국체전에 북측 선수들이 번외 경기에 참가할 수도 있다. 종목별 선수 선발과 출전 쿼터 문제가 있기에 도쿄올림픽 남북 단일팀 논의는 지금부터 시작해야 한다.



-- 단일팀이 딴 메달은 한국, 북한도 아닌 제3국 소속으로 남는다. 단일팀 '코리아'의 메달을 우리나라가 따낸 보통의 금메달처럼 인정할 방안은 있나.

▲ IOC와 논의를 해야겠지만, 올림픽 등 국제대회에서 남북이 딴 메달을 '코리아'의 메달로 합산하는 것도 하나의 아이디어다.

대신 우리나라와 북한은 자국 소속 선수가 딴 메달을 내부에서 인정해주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 야구와 축구를 비롯해 프로 선수들의 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에 따른 병역 혜택 논란이 뜨겁다. 어떻게 생각하나.

▲ 최근 양분된 여론을 잘 안다. 다만, 아마추어 종목 선수들에게 중요한 시기에 입대로 운동의 흐름과 선수 생명이 끊어질 수 있다.

이들에게 국위를 선양할 기회를 준다는 측면에서 아시안게임 금메달에 따른 병역 혜택은 필요하다.

꼭 아시안게임에만 한정하지 않고 세계선수권대회, 올림픽 등 각종 국제대회 성적을 바탕으로 한 포인트 마일리지 제도를 공론화를 거쳐 검토할 필요도 있다.

대회마다 가중 포인트를 둬 일정 포인트를 쌓아야 병역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제도다.

cany990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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