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게임] '모델→여자럭비 국가대표' 허경희 "지금만 생각해요"

입력 2018-08-29 13:10
[아시안게임] '모델→여자럭비 국가대표' 허경희 "지금만 생각해요"



(자카르타=연합뉴스) 신창용 기자 =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한국 여자럭비 대표팀 선수들은 대부분 키가 170㎝를 넘는다.

딱 벌어진 어깨와 까무잡잡한 피부, 단발머리 탓에 남성적으로까지 보이지만 유니폼만 벗으면 딴사람이 된다.

그 중에는 모델 경력이 있는 선수도 있다. 키 171㎝의 허경희(28)다.

2012년 케이블 채널 온스타일 '도전! 슈퍼모델 코리아 시즌3'에 출연해 최종 15위 안에 든 그는 이제 한국 여자럭비 국가대표 선수로 아시안게임 무대를 밟는다.

지난 28일 오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겔로라 붕 카르노(GBK) 럭비장에서 진행된 대표팀의 첫날 공식 훈련이 끝난 뒤 허경희를 직접 만나 그녀의 스토리를 들었다.

허경희는 서울체고와 한국체대에서 100m, 200m 단거리 육상선수로 뛰었다. 그런데 햄스트링 부상으로 꿈을 접어야 했다.

"육상을 그만두고 너무 절망적이었어요. 앞날을 고민하다가 어느 날 인터넷을 통해 머리 짧은 중성적인 모델 아기네스 딘을 봤어요. 그 모델 사진을 보고 나도 한번 해볼까 해서 도전을 하게 됐어요."

엄마의 신용카드를 들고 무작정 모델 학원에 등록했고, 여러 군데 오디션을 보러 다니던 차에 '도전! 슈퍼모델 코리아 시즌3'에 참가했다.

큰 키에 건강한 매력이 돋보이는 허경희는 1천 명의 참가자 중에 최종 15위에 들었다.

"끼만 있었더라면 모델 생활을 오래 했을 텐데….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계속 먹게 되더라고요. 점점 살이 쪄서 매니지먼트사에 살을 빼서 돌아오겠다고 했죠."

하지만 허경희는 모델 생활로 돌아가지 못했다.



어느날 고려대 럭비 선수 출신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럭비 경기를 보러 갔다가 그 매력에 푹 빠지고 말았다.

마침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 참가할 여자럭비 국가대표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발견했다. 그때가 시작이었다.

허경희는 테스트를 통과해 여자럭비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삐쩍 마른 허경희를 보고 동료들은 "저 언니 와서 뛰겠어?"라며 수군거렸다.

그 말에 상처를 받은 허경희는 매일 야식을 먹으며 살을 찌웠다. 50㎏대였던 체중을 거의 70㎏까지 불렸다.

하지만 대회를 2주 앞두고 훈련 도중 발 골절상을 입었다. 첫 아시안게임 출전이 그렇게 좌절됐다.

완쾌 후 2015년에 복귀했지만 2015년 말, 이번에는 제 발로 대표팀을 떠났다.

조정 한번 해보지 않겠느냐는 아는 동생의 '꼬드김'에 넘어가 조정의 길로 접어들었다. 여자럭비가 가장 힘든 종목인 줄 알았는데, 조정이야말로 '극한 직업'이었다.

조정을 1년 정도 한 허경희는 조성룡(47) 감독의 권유로 다시 여자럭비 대표팀에 합류했다.

허경희는 "돌아보니 정말 많은 것을 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최고는 럭비"라며 "상대 수비수를 뚫고 달려나갈 때의 희열은 정말 최고"라고 웃으며 말했다.

물론 앞날은 여전히 막막하다. 당장 이번 아시안게임이 끝나면 자신의 앞길에 어떤 일이 펼쳐질지 알 수 없다. 그래도 허경희는 지금이 좋다.

그는 "당장 내년부터가 걱정이지만 지금만 생각하면서 하고 있다"며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예요. 다른 걸 모두 떠나서 다들 럭비를 너무 좋아한다"고 했다.

허경희는 "이번 아시안게임 목표는 3승이다. 3승 했으면 좋겠다"며 "지금까지 대표팀 선수들 모두 잘해왔고, 또 좋아하니까 잘할 수 있다"고 했다.

changyong@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