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올림픽 메달 제작용 '銀모으기'가 제국주의 논란 부른 이유는
정부, 초중교에 '회수박스' 설치하고 메달 만들 銀수집 "협조해달라"
"태평양전쟁 금속 강제회수 같다"…서머타임 도입에도 '제국주의 부활' 비판
(도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일본 정부가 오는 2020년 도쿄(東京) 올림픽의 메달 제작에 쓰일 귀금속을 모으는 과정에서 일선 학교에 무리하게 협조를 요청했다가 '제국주의 시대 같다'는 볼멘소리를 듣고 있다.
29일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폐가전제품과 안 쓰는 스마트폰 등에 들어있는 금속을 회수해 도쿄올림픽 메달의 전량을 제작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자원 재활용이라는 친환경 올림픽이라는 이미지를 강조하겠다는 의도다. 일본 정부는 작년 10월 '도시광산메달연대촉진위원회'라는 조직을 만들어 금속 수집에 나서고 있다.
이런 친환경 노력에도 불구하고 비판론이 나온 것은 환경성이 초·중등학교들에 '협력'을 요청하면서부터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우체국과 이동통신사 NTT도코모의 점포에서 금속을 회수해왔고 금메달과 동메달에 쓰일 금속을 확보했지만, 은(銀)은 충분히 모으지 못했다.
이에 환경성은 전국 지자체에 협력을 요청해 공립 초·중등학교에 회수용 박스를 설치하고 학생들에게 안쓰는 휴대전화나 휴대용 컴퓨터를 내는 방식으로 올림픽 준비에 동참할 것을 당부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SNS에서는 태평양전쟁 당시의 '공출(供出)'제도를 연상시켜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일제는 전쟁 당시 무기 제조에 사용할 금속을 국민들에게 강제로 내도록(공출) 했으며, 이는 식민지시대 한반도도 대상이었다.
트위터에는 "전쟁 준비를 위해 냄비나 솥을 강제로 회수했던 것이 생각난다. 기분 나쁘다"는 비판이 쏟아졌으며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학교 조직을 사용해 금속을 모으려는 사고방식이 무섭다", "교육 현장의 부담이 늘어날 것이다"는 지적이 나왔다.
도쿄 올림픽을 둘러싸고 일본에서는 정부가 추진하는 학생 자원봉사 확대, 서머타임 도입, 폭염 대책에 대해 비슷하게 제국주의 시대로의 회귀 시도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문부과학성은 고등학교와 대학에 학생들의 자원봉사 참여 독려를 위해 수업이나 시험 일정을 유연하게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가 전시의 '학생동원령'을 연상시킨다는 비판을 받았다.
일본 정부는 서머타임 도입을 추진하고 있지만, 이와 관련해서는 "올림픽에 대한 무관심과 불참가를 허용하지 않으려는 의도로, 태평양전쟁 당시 '국가총동원령'과 다를 바 없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극우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지사가 이끄는 도쿄도는 올림픽 때 폭염 대책으로 길거리에 물을 뿌리는 방식을 도입하려 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죽창 정신'을 부활시키려는 시도라는 비판이 나온다.
'죽창 정신'은 죽창으로 서구의 열강에 맞서서 승리를 거둔다는 제국주의 시대 일본인의 사고방식이다. 거리에 물을 뿌려 온도를 낮추겠다는 발상이 비과학적인 자신감을 바탕으로 한 생각이라는 점에서 '죽창 정신'을 연상시킨다는 지적이다.
bk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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