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게임] 그을린 그녀들이 간다…여자럭비의 '아름다운 도전'

입력 2018-08-29 07:00
[아시안게임] 그을린 그녀들이 간다…여자럭비의 '아름다운 도전'



(자카르타=연합뉴스) 신창용 기자 = "이겨본 팀은 거의 없지만 그래도 목표는 3승입니다. 아니죠. 목표는 크게 잡아야 하니까 금메달이죠."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여자럭비 7인제 대표팀을 이끄는 조성룡(47) 감독의 유쾌한 출사표다.

지난 28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겔로라 붕 카르노(GBK) 럭비장에서 현지시간으로 오후 3시부터 대표팀의 첫 공식 훈련이 진행됐다.

오는 30일부터 9월 1일까지 사흘간 진행되는 열전을 이틀 앞두고 선수들은 뙤약볕 아래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담금질에 나섰다.

1시간 동안의 고된 훈련을 마치고 선수들이 인조잔디 위에 주저앉아 양말을 벗었다. 검게 그을린 다리 아래로 경계가 선명한 하얀 발이 인상적이었다.

올해 어느 때보다 뜨거웠던 폭염 속에서 이들이 얼마나 열심히 훈련했는지를 새까만 피부와 대비되는 하얀 발이 증명했다.

한국에는 여자럭비팀이 초중고, 대학은 물론 실업팀까지 단 한 곳도 없다. 현재 국내에서 여자럭비를 하는 곳은 대표팀과 클럽팀인 '서울 엘리스' 두 곳뿐이다.

엘리트 체육으로 럭비를 한 선수가 없어서 대표팀은 축구, 핸드볼, 육상, 태권도, 유도 선수 출신으로 구성됐다. 럭비를 취재하러 왔다가 대표팀에 들어온 기자 출신도 있다.

그래도 선수가 부족해 올해 3월 신입 선수 4명을 새롭게 충원했다.

새벽부터 매일 계속되는 대표팀 훈련에 하얗던 피부는 새까맣게 변해가고, 거친 몸싸움에 온몸은 피멍이 들었다. 서 있기만 해도 쓰러질 것 같은 땡볕 더위에도 달리고 또 달려야 했다.

학교 시절 럭비공 한 번 만져본 적 없는 선수들로 대표팀이 구성됐으니 지는 게 일상이었다. 한국 여자럭비는 아시아 1부리그 팀을 상대로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비인기 종목이라 관심도 받지 못하고, 아시안게임에 출전했다고 해도 받아주는 실업팀 하나 없는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도 낙오자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럭비 그 자체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정말로 럭비를 사랑하는 12명의 대표팀 선수들이 아시안게임에서 '아름다운 도전'에 나선다.



"선수들이 힘들어할 때면 이렇게 말하죠. 한창 예쁘게 꾸미고 연애할 나이에 왜 여기 와서 고생하느냐? 럭비 하고 싶어서, 럭비가 좋아서 여기에 온 것 아니냐? 그러면 주저앉지 말고 다시 일어나서 하자고 그랬죠"

조 감독의 말이다.

'시집간다'거나 '돈 벌러 간다'고 하면 말릴 도리가 없지만, 대부분은 럭비에 대한 열정을 일깨우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훈련장에 나타났다고 조 감독은 소개했다.



모델 경력으로 잘 알려진 허경희(28)는 럭비를 하는 이유에 대해 "불안한 미래를 떠나서 다들 럭비를 너무 좋아한다"며 "상대 수비수를 뚫고 달려나갈 때의 희열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여자럭비는 자카르타에서 세 번째 아시안게임 무대를 밟는다. 아시아에서 정상을 다투는 남자럭비에 비해 여자럭비는 아직 걸음마 단계다.

한국 여자럭비는 첫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총 239실점에 15득점으로 6전 전패를 기록하며 최하위로 대회를 마쳤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는 마지막 9∼10위 순위 결정전에서 라오스를 34-0으로 꺾고 마침내 첫 승리를 거뒀다.

그로부터 4년 동안 한국 여자럭비는 조금씩 성장해가고 있다. 한국 여자럭비는 재작년과 작년 아시아럭비 7인제 트로피 대회(2부 리그)에서 2년 연속 우승하고 1부 대회로 승격했다.

착실하게 준비를 마친 한국 여자럭비는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3승, 순위로 따지면 3~4위라는 달콤한 꿈을 꾼다.

chang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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