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잠기고 무너지고…시간당 60㎜ 물 폭탄에 홍역 치른 대전
곳곳 물에 잠겨…화물차에 경찰 순찰차까지 침수
(대전=연합뉴스) 한종구 기자 = 도로 위 승용차들이 보닛까지 흙탕물을 뒤집어쓴 채 물바다를 이룬 처참한 광경이 펼쳐졌다.
흙탕물 위로 승용차 윗부분만 눈에 들어올 뿐 도로와 인도의 구분이 되지 않았다.
잠기고 무너지고…시간당 60㎜ 물 폭탄에 홍역 치른 대전 / 연합뉴스 (Yonhapnews)
역대 최대 피해가 예상된 제19호 태풍 '솔릭'이 조용히 지나갔지만, 시간당 60㎜의 장대비는 대전지역 이곳저곳을 할퀴고 강타했다.
특히 유성구와 서구지역의 피해가 컸다.
28일 오전 7시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을 위해 집을 나선 직장인 김모(51·유성구 도룡동) 씨는 커다란 우산을 썼지만, 소용이 없었다.
비가 워낙 강하게 쏟아졌기 때문이다.
집에서 버스정류장까지 5분 거리였지만, 갑자기 불어난 비에 도로가 잠기면서 성인 무릎 위까지 물이 차오른 상태였다.
정류장에 도착한 지 20여분 만에 회사로 가는 버스를 탔지만, 버스는 5분 만에 멈춰 섰다.
도로 위에 차오른 빗물 때문에 버스가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버스는 출발지로 돌아갔고, 김씨는 다른 승객들과 함께 버스에서 내렸다.
흙탕물 때문에 어디가 도로인지, 어디가 인도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도로에는 출근길에 나섰다가 빗물에 갇힌 승용차와 물에 빠진 차를 끌어내려는 견인차를 비롯해 경찰 순찰차, 119구조대 차량 등으로 아수라장이 됐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시민들은 허벅지까지 올라온 빗물 때문에 정류장 의자 위에 올라서 있었다.
버스를 기다리다 지친 일부 시민들이 빗속을 뚫고 걸어서 출근하는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김씨는 "평소에는 출근하는데 20분이면 충분했는데, 오늘은 2시간이 넘어서야 출근할 수 있었다"며 "대전에서 10년 넘게 살았는데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같은 시각 전민동 일대 아파트 주민들은 온통 물바다가 돼 밖으로 나오지 못해 한동안 고립돼 있었다.
주부 이모(38·여) 씨는 평소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을 학교까지 데려다 줬지만 이날은 오전 내내 집에 있었다.
어른 허벅지까지 차오른 빗물을 뚫고 등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씨는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려고 나갔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며 "너무 위험해 밖에 나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전했다.
오전 11시께 비가 그치면서 도로 옆 하천으로 물이 빠지고 있지만, 흙탕물은 수확을 앞둔 '농심(農心)'도 집어삼켰다.
유성구 전민동에서 오이와 고추를 재배하는 박모(65) 씨는 흙탕물이 휩쓸고 간 비닐하우스 안을 바라보며 망연자실했다.
박씨는 "추석을 앞두고 수확을 기다렸는데 이번 비에 물바다에 작물이 모두 잠겼다"며 고개를 떨구었다.
이번 비로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곳곳에서 침수 피해가 발생했다.
유성구 장대동 한 단독주택에는 빗물이 방과 주방까지 들어와 주민이 급하게 대피하는가 하면 인근 상가 지하주차장도 모두 물에 찼다.
이날 새벽 차량을 급하게 이동 주차해 차량 침수는 막을 수 있었지만, 건물주 박모(58)씨 흙탕물 가득한 지하주차장을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지하주차장에 주차된 차량을 이동 주차하지 못한 상가가 많아 차량 침수 피해는 클 것으로 예상된다.
박씨는 "낙엽이 배수구를 막아 빗물이 빠지지 않으면서 침수된 것으로 보인다"며 "이런 사태를 대비해 수년 전부터 관공서에 민원을 넣었는데 해결되지 않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대전에는 지난 26일부터 이날 오전 9시까지 유성구 전민동 270.6㎜, 동구 세천동 213.0㎜, 중구 문화동 228.0㎜ 등의 비가 내렸다.
도로·주택 침수, 담장 훼손, 축대 붕괴, 토사 유실 등 29건의 피해신고가 접수됐지만, 비가 그치고 본격적인 조사가 시작되면 피해 규모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허태정 대전시장은 이날 오전 예정된 기자브리핑을 취소하고 유성구 전민동과 구암동 일대 피해현장을 찾아 신속한 복구를 지시했다.
대전시 관계자는 "당초 민선 7기 시정 구호와 핵심 정책 등을 발표하는 브리핑이 예정돼 있었지만, 집중호우로 피해를 본 시민을 찾아가는 게 먼저라는 생각에 브리핑을 취소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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