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가톨릭 내 성폭력 연일 사죄…"신께 용서 구해"(종합)

입력 2018-08-27 02:49
교황, 가톨릭 내 성폭력 연일 사죄…"신께 용서 구해"(종합)

39년만에 아일랜드 방문, 잇따라 사과…"진실·정의 추구…재발방지 노력"

세계가정대회 미사에 수십만 운집…요한 바오로 2세 때보다 크게 줄어

가톨릭 전통 강했던 아일랜드, 교회 위상 추락과 함께 급격한 사회변화 물결



(파리=연합뉴스) 김용래 특파원 = 아일랜드를 방문 중인 교황이 가톨릭 교회 내 성폭력을 방치하고 외면한 성직자 문제에 대해 잇따라 사죄하고 재발방지 노력을 약속했다.

가톨릭 전통이 강한 아일랜드는 2000년대 초반부터 사제들의 아동 성폭력 문제가 드러나면서 진통을 겪어왔다.

아이리시타임즈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아일랜드 방문 이틀째인 26일(현지시간) 저녁 더블린 피닉스 파크에서 열린 세계가정대회 미사에서 "피해자들께 교회가 구체적인 행동으로 공감과 정의, 진실을 보여주지 못한 시간에 대해 용서를 구한다"면서 거듭 사죄했다.

교황은 아울러 "일부 교회 구성원들이 이런 고통스러운 상황들을 돌보지 않고 침묵을 지킨 데 대해서도 사과드린다"고 덧붙였다.

앞서 교황은 이날 아침 서부 녹 성지(Knock Shrine)를 방문해서도 일요 삼종기도 강론에서 교회 내 성폭력 문제에 대해 사죄했다.

그는 강론에서 "우리 중 그 누구도 학대당하고, 순수함을 유린당하고, 고통스러운 기억의 상흔을 안게 된 젊은이들의 이야기에 감화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상처가 우리에게 더욱 굳건하고 결단력 있게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게끔 한다"고 말했다.

또 "이런 죄와 추문, 배신에 대해 신께 용서를 구한다"면서 "성모님께도 피해자들의 치유와 더불어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는 기독교 가족의 의지를 확인해달라고 기도했다"고 덧붙였다.

교황은 전날에는 더블린 교황청대사관에서 90분간 성직자들로부터 성 학대를 당한 피해자 8명을 만나 위로하고 기도를 올리는 등 아일랜드에서 권위가 바닥으로 추락한 가톨릭을 바로 세우고자 분투했다.

가톨릭 전통이 강한 아일랜드는 2000년대 초부터 아동을 상대로 한 천주교 성직자들의 성폭력이 잇따라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사회 전체가 몸살을 앓아왔다.

성 학대뿐 아니라 2014년에는 가톨릭이 오랜 기간 운영한 미혼모 보호시설에서 수백 명의 영아 유해가 무더기로 발견돼 충격을 주기도 했다.

아일랜드 정부와 여론주도층에서는 교황청이 아일랜드 가톨릭 교회의 추문과 부패를 묵과하고 이 문제에 미온적으로 대처한다면서 바티칸과 갈등해왔다.

최근에는 아일랜드 정치권에서 교회가 사법당국의 조사를 조직적으로 방해하려 했다는 증언들이 잇따라 나와 교황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메리 매컬리스 전 아일랜드 대통령은 2003년 교회 내 성폭력 사건에 대한 두 건의 조사가 진행될 당시 교황청의 고위 당국자가 교회의 기록들을 묻어달라고 요구했다는 사실을 최근 폭로했다.

그는 당시 이런 요구를 거절했다면서도 "대통령 재임 기간 가장 충격적인 순간들이었다"고 회고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 등 외신이 전했다.

이런 가운데, 가톨릭 전통이 매우 강한 나라였던 아일랜드는 동성 결혼과 낙태를 합법화하고 동성애자 총리를 배출하는 등 가톨릭의 보수적 가치들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방향으로 사회가 급격한 변화의 물결을 타고 있다.

교황을 39년 만에 맞은 아일랜드는 26∼27일 이틀간 전국에서 축제 분위기가 한껏 고조됐지만, 교황을 보러 나온 인파는 크게 줄었다.

3년마다 열리는 가톨릭의 주요 행사인 이날 세계가정대회에는 최소 10만에서 최대 30만가량의 인파가 모인 것으로 추산됐다.

아일랜드 인구가 500만인 것을 고려하면 매우 큰 규모지만, 1979년 요한 바오로 2세 방문 당시 100만 명의 인파가 운집한 것과 비교하면 많이 줄어든 것이다.

세계가정대회 미사가 진행되는 동안 서부 투암과 더블린에서는 가톨릭이 운영했던 미혼모 보호시설에서 유해로 발견된 영아들을 추모하는 침묵의 행진이 진행됐고, 교황의 방문 기간 내내 교회에 동성애 인정과 성폭력 방지 대책을 요구하는 시위가 조직되는 등 교황을 맞는 풍경은 39년 전과 사뭇 달랐다.

yongl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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