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10년] ①10년 전 그날 밤 세계가 얼어붙었다

입력 2018-09-09 05:45
[금융위기 10년] ①10년 전 그날 밤 세계가 얼어붙었다

'금융 연금술' 서브프라임 파생금융의 부메랑…양적완화·국제공조 파격 대응

"유동성 파티 끝났다" 출구전략 돌입…장기랠리·규제완화 '위기의 데자뷔'



[※편집자 주 = 9월 15일이면 미국 투자은행 리먼 브러더스가 2008년 파산보호를 신청함으로써 금융위기를 촉발한 지 10년이 됩니다. 10년이 지난 현재 글로벌 경기는 미국을 중심으로 살아나는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금융위기가 남긴 상흔은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있습니다. 아직 위기가 끝나지 않았다는 진단도 적지 않습니다. 해외에서는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와 연준의 금리 인상, 미중 무역전쟁, 신흥국 경제위기 등의 요인이 우리를 위협하고 국내에서는 실업, 양극화와 소득불균형, 저출산 고령화 등의 난제가 경기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에 연합뉴스는 금융위기 10주년을 맞아 그동안 추진해온 경제 살리기 경과와 성과, 국제·한국경제의 현주소와 위기 요인, 향후 추진과제 등을 짚어보는 8꼭지의 기획물을 마련해 송고합니다.]

(뉴욕=연합뉴스) 이준서 특파원 = 미국 동부시간 2008년 9월 15일 자정을 막 넘어선 무렵. 날이 밝는 대로 뉴욕 남부 파산법원에 파산보호(Chapter 11)를 신청하겠다는 '4대 투자은행'(IB) 리먼 브러더스의 보도자료가 나왔다.

휴일 심야까지 이어진 인수협상은 무산됐고 158년 역사를 자랑하는 리먼의 운명은 곧바로 결정됐다. 다른 한편에선 '황소 로고'를 유명한 굴지의 투자은행 메릴린치가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 매각됐다.

미국 투자은행 4곳 가운데 2곳이 침몰한 이 날, 출근길 대서양 건너편에서 전해진 뉴스에 유럽증시는 무너졌다. 뉴욕 다우지수는 504.48포인트(4.42%) 주저앉았다. 9·11 사태 직후인 2001년 9월 17일 이후로 최대 낙폭이었다. 추석 연휴를 마치고 이튿날 개장한 코스피지수는 6%대 폭락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첫 하루를 휘감은 단어는 '공포'였다. 진앙은 쉽게 드러나지 않았고 진폭은 가늠하기 어려웠다.

◇ "파국을 막아라"…'헬리콥터 벤'의 양적 완화

파국을 막는 게 급선무였다. 글로벌 충격파의 출발점이 월스트리트였다면, 그 해법도 미국의 몫이었다.

'리먼 살리기'를 주저했던 미국 당국은 1조 달러대 구제금융을 투입했다. '대마불사'(大馬不死)를 증명하듯 세계 최대 보험사인 AIG, 초대형 은행 씨티그룹도 막대한 자금을 수혈받았다.

글로벌 금융 시스템의 '최종 대부자'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소방수로 나섰다. 2%에 묶여있던 기준금리는 석 달 만에 0∼0.25%의 '제로금리'로 떨어졌다.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일제히 연준을 뒤따랐고, 국가마다 통화스와프 계약으로 방어막을 쌓았다.

금리 카드가 소진된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은 헬리콥터로 공중에서 살포하듯 달러를 찍어냈다. 이른바 '헬리콥터 벤'의 양적 완화(QE) 정책이다.

파격적인 금리 인하 조치, 각국 중앙은행의 국제공조, 기축통화국의 발권력, 여기에 전례 없는 재정지출이 더해지면서 위기의 공포감은 서서히 진정됐다.

2차 세계대전 이후로는 처음으로 2009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세계 경제는 회복의 불씨를 살려 2010년부터 'V자' 반등 곡선을 그렸다.

속절없이 무너졌던 뉴욕 증시는 6개월쯤 지나서야 바닥을 확인했다. 리먼 사태 직후 힘없이 10,000선을 내줬던 다우존스 30 산업평균지수는 2009년 3월 6,594를 찍고 우상향으로 방향을 틀었다.



◇ IB 금융공학이 만들어낸 '모래 위의 집'

발등의 불은 껐지만, 위기의 근원은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표면적인 주범으로는 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지목됐다. 그렇지만 실제 주범은 첨단 파생상품을 만들어낸 월가의 '금융공학'이었다.

은행은 서브프라임을 모기지은행에 넘겼고 모기지은행은 주택저당채권(MBS)으로 전환했다. 투자은행의 금융공학 전문가들은 서로 다른 등급의 MBS를 묶어 부채담보부증권(CDO)으로 만들어냈다. 신용도가 높은 프라임, 알트에이(Alt-A) 채권과 뒤섞이면서 서브프라임의 잠재적 리스크는 분산됐다.

채권보증회사들이 보증을 제공했고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높은 신용등급을 매겼다.

은행은 대차대조표상 부채로 잡힌 모기지를 유동화할 수 있었고 투자은행으로선 파생상품을 팔아 막대한 수익을 남겼다.

월가의 금융공학이 만들어낸 '금융의 연금술'에 서브프라임 고유의 리스크는 감쪽같이 수면 아래로 감춰졌고, 금융시장과 부동산시장은 실핏줄로 연결됐다. 시스템 위기가 가능해진 것이다.

부동산 호황기에 날개 돋친 듯 팔렸던 이들 파생상품은 2006년 미국 부동산시장이 침체기로 접어들자 곧바로 부메랑으로 되돌아왔다.

연준의 금리 인상 사이클과 맞물려 서브프라임 연체율이 치솟았다.

모기지 대출 업체들이 하나둘 무너졌지만 별다른 시선을 끌지 못했다. 2007년 4월엔 미국 최대 모기지 대출회사인 뉴센추리 파이낸셜이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모래 위의 집'은 서서히 허물어졌고 급기야 5위의 투자은행 베어스턴스를 덮쳤다. 2008년 3월 미정부 주도로 베어스턴스는 JP모건체이스에 넘어갔다. 6개월 뒤 몰아칠 금융위기의 전주곡이었다. 그렇지만 시장은 위기를 준비하기는커녕 안도했다.

◇ '살찐 고양이' 월스트리트 규제론 증폭

근본적으로 금융회사의 내부 규제시스템은 느슨했고 감독 당국은 눈을 감았다. 제2의 리먼 사태를 막기 위해선 규제 강화 조치가 필요했다.

위기에서 한숨 돌리자 월스트리트는 탐욕의 모습을 드러냈다. 혈세를 동원한 막대한 구제금융을 받았던 월스트리트가 다시 '돈 잔치'를 벌이자, 시민들의 분노가 쏟아졌다.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는 구호는 맨해튼을 넘어 미국 전역으로 확산했다.

금융위기 와중에 당선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금융회사 경영진을 "살찐 고양이"이라고 비판하며 금융규제를 밀어붙였다.

1930년 대공황 이후 최대 금융시스템 개편으로 꼽히는 오바마 금융규제의 상징은 '도드-프랭크 법'이었다.

크리스토퍼 도드 미국 상원 금융주택위원장과 바니 프랭크 하원 금융서비스위원장이 입안한 것으로, 무엇보다 고위험 자산에 대한 자기자본 거래(프랍 트레이딩)를 제한하는 '볼커 룰'이 핵심이었다.





◇ 증시 초장기 강세 속 '위기의 데자뷔'

금융위기의 후폭풍에서 벗어나 글로벌 경제는 9년간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갔다. 2010년 남유럽 4개국의 재정위기, 일명 'PIGS'(포르투갈·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가 작은 충격파를 던졌지만, 주식과 부동산 가격은 금융위기 이전 가격을 되찾았다.

지난달 22일 뉴욕 증시는 역대 최장(最長) 랠리라는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2009년 3월 9일 바닥을 찍고 반등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는 고점 대비 20% 이상 떨어지지 않는 '강세장'을 이어왔다. 닷컴 버블 당시의 3천452일(1990년 10월~2000년 3월) 랠리를 뛰어넘었다. 실리콘밸리의 정보·기술(IT) '공룡'들에 힘입어 나스닥도 잇달아 신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금융위기의 기억은 희미해졌고 '제2의 시스템 위기'를 막기 위해 도입된 규제조치들은 다시 느슨해졌다. 지난해 1월 규제 완화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했고, 도드-프랭크 법을 완화하는 개정안이 상원과 하원을 잇달아 통과했다.

양적 완화가 만들어낸 '유동성 파티'에 자산가치는 뛰었지만, 경제 펀더멘털은 오히려 취약해졌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주요국 중앙은행은 유동성을 빨아들이는 출구전략에 나섰고, 그 선두에 있는 연준은 점진적인 긴축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터키·아르헨티나를 비롯한 신흥시장부터 흔들리고 있다.

세계 경제 전반에 1930년대 '대공항'에 버금가는 충격과 상처를 안긴 '리먼 사태'가 터진 지 10년, 위기와 불안은 오히려 상시화됐다.

j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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