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진압 중인 소방당국 데이터 속도 1/200로 늦춘 美버라이즌
역대급 화재에 "고가 플랜 가입하라"며 소방서 긴급 요청 묵살
(서울=연합뉴스) 김현재 기자 = 화마에 맞서 사투를 벌이는 미국 소방 요원들이 갑자기 느려진 데이터 속도로 응급 구호 작업에 차질을 빚은 사실이 드러났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 카운티 소방서의 앤서니 보든 서장은 21일 법원에 보낸 서면 진술서에서 "인터넷 속도 제한이 위기 대응과 필수 응급 서비스를 제공하는 소방당국의 능력을 저해한다는 통보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버라이즌 측이 데이터 전송 속도를 200분의 1로 낮췄다"고 말했다.
지난달 말 발화해 3주일 동안 서울시의 3배 면적인 40만 에이커(1천618㎢) 이상의 산림을 태워버린 캘리포니아 북부 '멘도시노 콤플렉스' 산불은 주 재난 역사상 최대 산불로 기록됐다.
보든 서장은 "소방서는 정부의 무제한 데이터 서비스 규정에 따라 계약을 맺었지만, 버라이즌은 특정 기준을 초과하면 속도가 늦어지는 계약 조건을 언급하면서 소방서의 긴급 요청을 거부했다"고 말했다.
그는 "인터넷은 수백 대의 화재진압 차량과 소방헬기, 수천 명의 소방 요원들을 효율적으로 배치하고 조직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도구가 됐다"면서 "그러나 인터넷 속도가 전화연결 속도보다 더 느려지면서 소방관들은 다른 기관의 인터넷을 연결하거나 자신의 개인기기를 사용해 통신 시스템을 작동시켜야 했다"고 말했다.
보든 서장은 화재가 시작되기 전부터 버라이즌과 가격 협상을 벌인 이메일들을 법원에 증거로 제출했다.
문건에는 "더 높은 가격 플랜을 채택할 때까지 데이터 상한을 해제하지 않을 것"이라는 버라이즌의 입장이 담겨있었다.
이에 대해 헤이디 플래토 버라이즌 대변인은 "우리는 응급 상황에서 데이터 속도 제한을 철회하는 관행을 갖고 있고 많은 경우 이를 실행해왔다"면서 "이번의 경우 우리는 고객이 요청했을 때 속도 제한을 철회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실수를 저질렀다"고 인정했다.
보든 서장의 진술은 미 연방통신위원회(FCC)의 망 중립성 원칙 폐기를 번복하기 위한 소송의 증거로 법원에 제출됐다.
'망 중립성'이란 인터넷 서비스를 전기·수도와 같은 일종의 공공재로 간주해 망(네트워크) 사업자(통신회사)가 웹 콘텐츠를 함부로 차단하거나 감속할 수 없도록 규정한 것으로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 채택돼 2년 동안 운용됐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후 공화당이 장악한 FCC에서 이를 폐기했다.
FCC는 "이 상황은 망 중립성과는 관계가 없다"면서 "통신 사업자가 긴급 대응 상황에서 데이터 상한을 포기할 것을 강력히 권고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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