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게임] 1∼3위 휩쓸고도 환호 못한 태극궁사…숨막히는 '그들만의 전쟁'

입력 2018-08-21 15:20
[아시안게임] 1∼3위 휩쓸고도 환호 못한 태극궁사…숨막히는 '그들만의 전쟁'

내부선발전 겸한 피말리는 예선…전체 5위 하고도 '탈락'



(자카르타=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양궁 종목 첫 경기가 열린 21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GBK) 양궁장의 전광판 상단은 태극기로 채워졌다.

70m 거리에서 총 72발을 쏘는 여자 리커브 예선 라운드에서 강채영(22·경희대), 이은경(21·순천시청), 장혜진(31·LH), 정다소미(28·현대백화점)가 나란히 1∼3위와 5위를 차지했다.

최상의 결과였지만 마지막 발사를 마치고 그늘막으로 돌아오는 선수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조심스러운 미소와 허탈한 웃음이 환호를 대신했다.

이날 예선 라운드 결과가 아시안게임 종목별 엔트리 결정을 위한 내부선발전이기도 해서 결과에 따라 선수들의 희비가 극명히 엇갈렸던 탓이다.

7개월여의 길고 치열한 선발전을 거쳐 지난 4월 태극마크를 단 4명의 여자 리커브 대표팀 선수들은 그때부터 또다른 경쟁을 시작했다.

아시안게임에는 규정상 개인전에 한 국가에서 최대 2명만 나올 수 있기 때문에 내부 경쟁을 거쳐 출전자를 가려야 했다.

4월 최종 선발전과 이후 세 차례의 월드컵, 마지막으로 이날 아시안게임 예선의 성적까지를 합산해 상위 2명이 개인전, 3명이 단체전을 뛰기로 했다.

성적이 가장 좋은 1명은 혼성전까지 뛸 수 있는 반면 4등을 한 선수는 아시안게임 예선까지 치르고도 메달 도전을 이어가지 못하는 냉혹한 경쟁이었다. 선발에 최대한 공정성을 기하기 위한 노력인 동시에 선수들이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지 않고 기량을 닦을 수 있게 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이번 대회 전까지 대표팀 4명의 선발전 점수는 장혜진이 44점으로 1위였고 이은경(35점), 강채영(32점), 정다소미(23점) 순으로 뒤를 이었다.

이번 예선 라운드에 걸린 배점이 1위 20점, 2위 15점, 3위 10점, 4위 5점이었기 때문에 이날 결과에 따라 얼마든지 순위가 요동칠 수 있었다.

실제로 예선에서는 시시각각 선수들의 순위가 춤을 췄다.

막내 이은경이 초반부터 중후반까지 선두를 달렸고, 장혜진은 3위에서 정다소미의 추격을 받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선발전 선두는 이은경이 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막판 강채영이 이은경을 제치고 선두로 올라섰다. 정다소미도 마지막까지 추격을 이어가면서 마지막 6발을 남기고도 결과는 안갯속이었다.

다른 나라 선수들과의 경쟁은 일찌감치 의미가 없어졌다.

마지막 엔드가 끝난 후 선수들의 점수를 확인한 지도자들은 모여서 선발전 최종 점수를 계산하기 시작했다.

결국 정다소미의 추격을 따돌린 장혜진이 선발 점수 선두를 지켰고, 예선 선두인 강채영은 이은경 대신 2위에 오르며 극적으로 개인전 출전권을 거머쥐었다.

세 종목 모두 출전권을 얻고도 겸연쩍은 표정만 지었던 장혜진은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상황"이라며 "서로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똑같은 상황이 펼쳐졌던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선 예선 후 눈물바다가 펼쳐졌지만 이날 우는 선수들은 없었다.

2연패 도전에 실패한 정다소미는 "이제 응원해야죠"라며 씩씩하게 웃었고, 마지막에 흔들려 개인전 출전권을 아깝게 놓친 이은경도 곧 아쉬운 표정을 떨치고 감독에게 웃으며 투정을 부렸다.

장혜진은 "다들 겪어왔던 일이라 이제 우는 선수들은 잘 없다"며 "다소미가 웃으면서 후련하다고 말해줘서 언니로서 고마웠다"고 말하기도 했다.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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