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사 '평일 외출' 첫날…"기분은 좋은데 시간 짧아 아쉬워요"
시내 음식점서 끼니 해결 후 생필품 구매 또는 카페·PC방서 '자유 만끽'
이동시간이 외출시간 절반 차지…영화 관람 등 문화생활 즐기기에는 부족
(화천=연합뉴스) 박영서 기자 = "이렇게 나올 수 있어서 기분은 좋은데 시간이 짧아 아쉬워요. 뭘 해야 할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일과 후 병사 평일 외출 시범운용 첫날인 20일 오후 우리나라 최전방 접경지인 강원 화천군 도심이 평일임에도 외출을 나온 병사들로 모처럼 활기를 띠었다.
화천에서도 번화가라고 할 수 있는 버스터미널 주변은 오후 6시가 지나자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외출 나온 병사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휴가를 마치고 부대에 복귀하는 병사들이 근처 패스트푸드점이나 터미널 휴게실에서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는 모습과 달리 갓 외출을 나온 병사들은 어디로 가야 할지 정하지 못한 듯 이곳저곳을 배회했다.
고민 끝에 병사들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음식점. 부대에서 저녁 식사를 먹지 않고 나온 탓에 병사들은 중국집이나 피자집 등에서 끼니를 해결했다.
부대 동료들과 함께 피자집을 찾은 한모(23) 상병은 "일단 저녁부터 먹고 뭘 할지 생각해야 할 것 같다. 부대에서 구매하기 어려운 물건을 사고, 만약 시간이 남는다면 PC방에 가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한 상병의 말처럼 병사들은 식사 후 안경원이나 화장품 가게 등에서 부대에서 구매하기 어려운 생활필수품을 산 뒤 카페나 PC방을 찾아 '잠깐의 자유'를 만끽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처음 나온 평일 외출인 데다 이동시간을 빼면 시간이 넉넉하지 않고, 번화가라고는 해도 대도시와 견줘 즐길 거리도 충분하지 않아 병사 대부분이 발걸음을 옮긴 곳은 가장 익숙한 'PC방'이었다.
한 병사는 "부대에서 시내까지 오가는 데만 2시간 가까이 걸리고, 버스를 놓치면 1만5천 원이나 주고 택시를 타야 한다"며 "영화를 보고 싶긴 한데 시간이 부족하다"고 아쉬워했다.
병사들의 평일 외출로 화천 시내 상인들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피자가게를 운영하는 문정식(42)씨는 "장병이나 면회객 소비는 주로 주말이나 공휴일에만 집중됐는데 평일에도 병사들이 찾아주니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중국집 사장 유금영(47·여)씨도 "손님이 많지 않은 시간인데 병사들 덕분에 오늘은 매출이 조금 더 늘었다"며 "앞으로 더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이날부터 10월 31일까지 육·해·공군, 해병대 등 13개 부대를 대상으로 평일 일과 이후 외출 제도를 시범 운용한다.
육군은 화천 7사단을 비롯해 3·12·21·32사단 등 5개 부대이고 해군과 해병대는 1함대, 해병 2사단 8연대와 6여단 군수지원대대, 연평부대 90대대 등이다.
공군은 1전투비행단, 7전대, 305관제대대, 518방공포대를 시범부대로 정했다.
외출을 나가는 병사들은 평일 일과가 끝나는 오후 6시 이후에 외출해 당일 저녁 점호시간(통상 오후 10시) 전에 복귀해야 한다.
다만 부대 여건을 고려해 지휘관 판단으로 시간을 조정할 수 있도록 했다.
병사들의 평일 일과 이후 외출은 부모와 가족 등 면회, 외래병원 진료, 분·소대 단합활동 등으로 제한된다.
음주 행위는 절대 금지이지만, PC방 출입은 시범운용에서 일단 제한을 두지 않기로 했다.
국방부는 '국방개혁2.0' 과제로 사회와의 소통 확대와 작전·훈련 준비를 위한 충분한 휴식 보장 등의 취지에서 내년부터 평일 일과 이후 병사 외출 제도 전면 시행을 검토 중이다.
앞으로 시범운용 기간 중 두 차례의 장·단점 중간평가를 하고, 병사와 부모 의견수렴과 전·후방부대 형평성 등을 충분히 고려해 연말까지 합리적인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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