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택 충격' 6개월…밀양연극촌 사택·숙소 텅텅 비어
조경공사·리모델링으로 새 단장 중, 축제는 10월로…"다시 연극의 메카로 만들어야"
(밀양=연합뉴스) 정학구 기자 = 지난 20일 오후 경남 밀양시 부북면 옛 월산초등학교 자리에 들어선 밀양연극촌.
더위가 한풀 꺾였다곤 하지만 여전히 섭씨 30도를 웃도는 무더위 속 연극촌은 잠시 모든 기능이 멈춘 듯 적막하기까지 했다.
정문을 들어서니 밀양연극촌의 대표 공연장인 '성벽극장'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정문에서 성벽극장 사이에 있던 공터엔 보도블록과 잔디가 깔리고 극장 앞에 올린 작은 담 구멍 사이론 시원한 물이 흘러나왔다. 전에 없던 '수변공간'에다 새로 한 조경공사 흔적 등으로 방문객들에겐 약간 낯설어 보인다.
불과 6개월 전 전국을 발칵 뒤집어놓았던 충격적 사건으로부터 빨리 벗어나고 싶고, 최단시간에 연극촌이 새로 태어나야 한다는 절박함을 보여주는 장면인듯하다.
연극촌을 17년간 운영했던 이윤택 감독은 단원들에게 상습적으로 성폭력을 행사한 혐의로 구속기소 됐고, 연극이 좋아 배우의 꿈을 안고 숙식을 하며 연극촌을 지켰던 사람들은 간데없다.
작년까지만 해도 7월 말에서 8월 초까지 열흘 넘게 밀양연극촌과 밀양아리랑아트센터 등지에선 국내 대표 연극축제로 부상한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가 열렸다.
연기 인생 60주년을 맞은 배우 이순재와 밀양 출신 배우 손숙이 호흡을 맞춰 '세일즈맨의 죽음'이 공연되기도 했다.
축제 기간 배우와 스태프, 외부 손님까지 합쳐 모두 250명분의 식사를 준비했다고 한다.
축제 중엔 배우들만 80여 명에 이르렀고 축제가 끝나도 40∼50명의 배우와 지망생들이 연극촌에 머물려 연기 공부를 하고 수업을 받고 훈련을 했다.
성벽극장 뒤 연극촌 본관 1층 복도엔 젊은 배우들의 의상이 끝도 없이 걸려 있다. 본관 2층 숙소엔 전국에서 연극을 배우러 몰려든 배우 지망생들이 가득했을 것이다.
이날 둘러본 숙소는 텅텅 비었고 주인 잃은 라커룸도 소리 없이 열렸다.
10개에 이르는 방 이름은 특이했다. 수업방, 세자매방, 개똥이방...
성벽극장 뒤로 돌아가자 이 감독 부부가 기거한 사택이 있다. 거실 내부는 나무로 바닥을 깔았고 나무 계단으로 2층까지 연결돼 있다.
텅 빈 집 안 어디에도 한국 연극계와 밀양시를 충격에 빠뜨렸던 성폭력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 감독이 사택으로 사용했던 건물 뒤편엔 원로 연극인 2명의 기념관이 자리했다.
왼쪽으로 더 돌아가니 '연극도서관'이란 예쁘장한 간판을 건 길쭉한 건물이 나왔다. 연극축제를 17회 여는 동안 나온 각종 자료를 모아둔 곳이라고 김덕진 밀양시 문화예술 담당이 설명을 붙인다.
스튜디오극장 1, 2가 보이고 우리 동네극장, 숲 속 극장, 창고극장 등이 보인다.
겉으론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명작 연극이 공연되면 배우와 관객은 함께 웃고 울었고, 긴 여운은 뭇 사람들의 인생을 바꾸기도 했으리라.
하지만 연극을 잃은 극장은 단지 빈 창고에 불과했다.
한참 연극촌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다 보니 방 한 곳에 청년 10여 명이 모여 뭔가를 한참 의논하는 모습이 보여 의외였다.
방 입구엔 '청년 케이스타(K-star)연극아카데미'라고 적은 문패를 달아놓았다.
이윤택 사단이 이끌던 연극촌이 소리 없이 무너진 후 밀양시가 향후 밀양연극촌을 이끌 젊은 연극인을 선발 중인데, 이들은 그중 일부였다.
시는 40명가량을 전국에서 모아 연극촌에서 연극을 배우고 훈련하고 올해 임시로 10월로 옮긴 연극축제 기간엔 자원봉사 등 다양한 일을 하도록 할 예정이다.
청년 일자리 창출과도 연계해 모집하는 이들에겐 월급도 지급된다.
밀양시는 이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걸고 있는 듯했다.
밀양연극촌은 1만6천104㎡ 부지에 극장과 사택 등 건물 연면적 4천578㎡ 규모다.
극장은 800석 성벽극장과 350석 우리 동네극장, 250석 스튜디오극장 등 6곳이다. 이밖에 연습실, 게스트하우스, 숙소 및 사택 등이 있다.
이윤택과 연희단거리패 단원들이 폐교인 월산초교에 입주해 리모델링을 거쳐 1999년 10월 30일 정식 개촌했다. 밀양 여름연극축제는 다음 해부터 매년 열렸다.
밀양시는 이윤택 감독이 단원 성폭력 의혹이 불거진 것과 관련, 기자회견을 연 지난 2월 19일 밀양연극촌 무료임대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시는 그동안 사단법인 밀양연극촌과 3년 간격으로 무료 임대계약을 해왔다. 최근 임대계약도 2019년 11월 25일까지로 돼 있다.
이윤택 감독의 밀양연극촌 운영에 대해선 '독단적'이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초창기부터 밀양연극촌 개설에 관여해온 한 관계자는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이 관계자는 "전국 연극인들 가운데 연극촌을 걱정하는 연락을 많이 해온다"면서 "이번 일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한국 연극계와 연극인들을 위해서도 밀양연극촌을 반드시 '연극의 메카'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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