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명 신청에 묵묵부답 영국 정부'…일부는 20년 이상 대기
'6개월 내 승인 여부 통보' 기준 있지만 4명 중 1명은 더 걸려
일자리 못 구해 1주일에 5만원 수당으로 열악한 생활
(런던=연합뉴스) 박대한 특파원 = 옛 소비에트연방 소속 국가 출신인 아나 아사티아니(29)는 2013년 남편, 딸과 함께 영국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망명 신청을 했다.
영국에 대한 기대도 잠시, 그녀의 망명 신청 승인 여부는 차일피일 미뤄졌다. 결국 그녀와 가족은 5년을 기다려야 했다.
아사티아니는 "망명 승인 여부를 기다리던 시기가 내 인생에서 최악의 시간이었다"면서 "아무도 왜 승인 결정에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는지 설명해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5년간 불확실한 상태에서 생활한 데 대한 사과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변호사 교육을 받았지만 이곳에서는 일할 수가 없어 무용지물이 됐다"면서 "5년의 세월이 내 정신과 육체를 망가뜨렸다"고 영국 정부를 비판했다.
아사티아니와 같이 영국에 망명을 신청한 이들 중 일부는 최장 20년 이상 이 같은 불확실한 상태에 놓이면서 인권에 위협을 받고 있다고 진보 일간 가디언이 1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영국에서 망명을 신청한 이는 승인을 받을 때까지 직업을 구할 수 없다. 대신 1주일에 37.75 파운드(한화 약 5만4천 원)의 수당을 받는다.
수당 액수가 터무니없이 적다 보니 망명 신청자들은 끼니를 거르는가 하면, 변호사나 자선단체 관계자들을 만날 때도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대신 걸어 다니는 경우가 많다.
영국 정부에서 다른 망명 신청자들과 함께 살 수 있는 거처를 마련해주지만, 쥐와 곰팡이가 들끓는 등 매우 열악한 상태에 있거나 빈민가에 위치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영국 정부는 복잡하지 않은 망명 신청의 경우 6개월 이내 승인 여부를 결정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그러나 제출된 망명 신청의 상당 부분은 이 보다 더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지난해 영국 내무부의 망명 신청 승인 결과에 따르면 전체의 4분의 3인 1만8천189명은 6개월 내 결정이 내려졌지만, 2천832명은 결과를 받아보는데 6개월∼1년, 3천59명은 1∼3년, 243명은 3∼5년이 걸렸다.
17명은 무려 15년 이상을, 이 중 4명은 20년 이상을 영국 정부의 망명 승인 여부를 기다리면서 보냈다.
망명 신청자는 주로 아프가니스탄과 콩고민주공화국, 소말리아, 예멘 등에서 온 이들이 많았다.
한 망명 관련 자선단체 관계자는 "망명 신청자가 직업을 구하지도 못하게 하면서 빈곤한 생활을 15년 이상 지속하게 하는 것은 완전히 야만적인 일"이라고 비판했다.
영국 내무부 대변인은 "복잡하지 않은 망명 신청의 경우 6개월 이내 결정을 내리려 하고 있지만 복잡한 이슈가 걸려 있어 6개월 이상 걸리는 경우도 있다"면서 "이들에 대해서도 1년 이내 승인 여부를 내리려 노력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그는 "망명 신청자에게 무료로 숙소가 제공되고 있으며, 정부가 필수적인 생활을 위한 관리비와 수당 역시 지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pdhis9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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