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톱 아이돌은 왜 한국인 춤 선생님을 모셨나

입력 2018-08-19 06:00
일본 톱 아이돌은 왜 한국인 춤 선생님을 모셨나

AKB48·헤이세이점프, 여자친구·BTS 안무가 초빙

K팝 시스템, 아이돌 본고장 일본으로 역수출

(서울=연합뉴스) 박수윤 기자 = 최근 온라인에서는 일본 아이돌 그룹 헤이세이점프의 신곡 연습 영상이 화제가 됐다. 빅히트엔터테인먼트의 퍼포먼스 디렉터 손성득이 헤이세이점프를 지도하는 모습이 나온 것.

손성득은 방탄소년단의 '불타오르네', '낫 투데이'(Not Today), '피 땀 눈물', 'DNA' 등 난도 높은 춤을 만든 안무가. 박력 있는 동선은 물론 눈빛과 표정, 제스처를 아우르는 섬세한 디렉팅으로 정평이 났다.



앞서 안무가 박준희는 일본 최고 인기 그룹인 AKB48 춤 선생으로 초빙됐다. 지난 5월 발표된 노래 '티쳐 티쳐'(Teacher Teacher) 안무가 그의 손끝에서 탄생했다. AKB48이 한국인 안무가와 작업한 최초 사례다.

박준희는 그룹 여자친구의 '유리구슬'부터 '오늘부터 우리는' 등 히트곡 대부분의 춤을 지도했다. 최근에는 엠넷 '아이돌학교'와 중국 텐센트TV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 '창조 101'에 멘토로 참여했으며, 평소 인순이와 그룹 신화의 무대에 현역 댄서로도 활동했다.



◇ 일본 아이돌은 왜 K팝 스타일에 도전했나

이처럼 일본 아이돌이 K팝 스타일을 받아들이는 이유는 뭘까. 결국 자국 음악시장에서 변화를 감지했기 때문이다.

일본 대중음악 가수는 크게 아티스트와 아이돌로 나뉜다. 아티스트는 뛰어난 실력을 요구받지만, 아이돌은 대중과 친근하게 소통하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

이제 분위기가 달라졌다. 칼군무와 파워풀한 창법을 앞세운 K팝 그룹에 익숙해지며 아이돌에 대한 기준이 높아진 것이다.

지난 6월 25일 발표된 '일본 오리콘 2018년 상반기 랭킹'을 보면 앨범차트 톱 25에 방탄소년단(4위), 세븐틴(14위), 엑소(19위), 샤이니(25위) 등 K팝 그룹 4개 팀이 이름을 올렸다. 싱글차트에서도 트와이스(8·9위), 동방신기(20위)가 상위권에 안착했다. 우리나라 음악차트가 한국 노래로 빼곡히 채워지는 현상과 상반된다.

헤이세이점프와 AKB48로서는 이미지 변신도 필요했다. 10대 중후반이던 2007년 데뷔한 헤이세이점프 멤버들은 어느덧 20대 중후반이 됐다. 풋풋한 콘셉트를 고수하기엔 어색한 나이가 된 것. AKB48도 여전히 음반을 냈다 하면 오리콘 차트 1위를 휩쓸지만 판매량은 점점 떨어지고 있다. 율동 수준의 안무가 식상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황선업 일본음악평론가는 "헤이세이점프, AKB48 모두 굳어진 이미지를 타파하기 위한 도구로 K팝 스타일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나 실효성이 있을지 예단할 수 없다. 아무리 한국인 안무가를 데려와도 멤버들의 역량이 부족하면 소화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 일본으로 역수출되는 K팝 트레이닝 시스템

사실 헤이세이점프 소속사 '자니스 사무소'는 스마프, 아라시, 뉴스, 캇툰 등 아이돌 시조새라 할 만한 그룹을 배출한 곳이다.

역량 있는 10대를 뽑아 춤과 노래를 트레이닝하고 철저한 기획 아래 팀을 꾸려 데뷔시키는 한국 연예기획사 시스템도, 알고 보면 자니스에서 벤치마킹한 것이 많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이제 K팝 트레이닝 시스템을 아이돌 본고장인 일본으로 역수출하는 시대라고 말한다. 한국 기획사가 개최하는 글로벌 오디션에는 수많은 10대 청소년이 몰린다. 한때 아시아를 호령하던 J팝이 성장을 멈춘 사이 K팝과 역전이 일어난 것이다.

실제로 엠넷 '프로듀스48'은 AKB48로 활동 중인 일본 가수들이 '연습생' 타이틀을 달고 한국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국내 연습생 중에는 곧바로 데뷔해도 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갖춘 인재가 많았지만, 현지에서 데뷔까지 한 일본 연습생은 실력이 그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황 평론가는 "국내에선 1세대 아이돌인 H.O.T., S.E.S 시절부터 '가수는 실력이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며 "그에 부응하기 위해 H.O.T.도 3집부터는 자작곡을 썼고, 오늘날 아이돌 성공사례가 이어지며 재능있는 10대가 아이돌 시장으로 몰리는 순환구조가 만들어졌다"고 분석했다.

이어 "내수 시장이 작은 탓에 글로벌 시장을 타깃으로 기량을 갈고닦는 한국 아이돌과, 내수만으로도 충분해 자국 가요 팬들의 취향만 충족하면 되는 일본 아이돌은 애초에 지향점이 달랐던 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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