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냉해·전염병 견뎠더니 최악 폭염…건질 게 없어"
과수원마다 썩어서 버린 사과·복숭아 투성이…"재앙 수준"
폭염 피해 자고 나면 눈덩이…충북서만 460㏊ 농지 초토화
(충주=연합뉴스) 김형우 기자 = "봄철 이상저온으로 냉해를 입었고, 화상병이 돌아 또 피해를 봤지만 견뎌냈는데 지독한 폭염에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어요. 올해 농사는 기대할 게 없어요"
낮 최고기온 기록을 연일 갈아치운 최악의 폭염에 농민들은 두손두발을 다 들었다.
봄철 냉해와 전염병에 이어 닥친 폭염은 말 그대로 '삼재'였다.
여물기도 전에 말라비틀어지고, 갈라지면서 내다 팔만 과일을 찾아보기 어려운 지경이다.
'사과의 고장'인 충북 충주에서 53년간 사과 농사를 지어온 베테랑 농민 유만화(73)씨도 사상 유례없는 올해 폭염은 비껴갈 수 없었다.
충주시 안림동 안심마을에서 1만9천여㎡ 규모의 사과·복숭아밭을 재배하는 유씨는 구름 한 점 없이 직사광선이 내리쬐는 하늘을 야속하게 쳐다보며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유씨는 1965년부터 53년째 사과·복숭아 농사를 지어온 덕에 충주에서는 인정받는 과수 전문가다.
오랜 농사를 통해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매년 최상 품질의 사과를 출하해왔다.
과수에 관한 한 '베테랑'이라고 자타가 공인했던 그였지만, 사상 유례없는 올해 폭염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유씨는 "물을 공급할 관수 시설까지 설치해 놓고 온종일 과수원에서 살다시피 하는 데도 폭염에 못 견디고 썩어나가는 사과를 막을 길이 없다"며 "평생을 사과 농사에 매달렸지만 이런 재앙은 처음"이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유씨의 과수원 곳곳에는 땅에 떨어져 문드러지고 있는 사과와 복숭아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자식처럼 애지중지 키운 사과와 복숭아가 제대로 여물기도 전에 쓰레기로 둔갑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유씨는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 간다.
유씨는 "아오리(사과 품종) 출하는 거의 끝났는데 생산량이 20∼30%나 감소했다"며 "워낙 가물었던 탓에 씨알이 작아 예상 수확량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나는 그나마 사정이 괜찮은 편"이라며 "결실률이 작년의 50% 수준에 그치는 농가도 수두룩하다"고 혀를 찼다.
추석을 한 달여 앞두고 수확의 풍요로움에 들떠 있어야 할 과수 농가들은 냉해와 전염병, 폭염 등 봄부터 끊이지 않았던 자연재해로 한해 농사를 망쳤다며 울상을 짓고 있다.
지난 4월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거나 서리가 내리는 등 이상저온 현상으로 사과가 제대로 자라지 못한 채 낙과하는 냉해가 충주 과수 농가를 휩쓸었다.
냉해를 가까스로 이겨내 한숨을 돌린 것도 잠시, 이번에는 화상 병균이 제천과 충주를 덮쳐 과수 농가를 괴롭혔다.
화상 병균이 어느 정도 진정되자 이번에는 사상 최악의 폭염과 가뭄이 과수 농민들을 절망에 빠뜨렸다.
지난 15일까지 충북의 농작물 폭염 피해면적은 460.5㏊에 이른다.
폭염 피해를 겪었던 2016년 250㏊보다 2배가량 많은 면적이다. 작년에는 폭염 피해가 없었다.
사과 191.4㏊, 복숭아 9.9㏊, 포도 2.8㏊ 등이 알이 갈라지거나 터지는 열과(熱果)와 과일 표면이 변색하는 일소(日燒·햇볕 데임) 피해를 봤다.
수분 부족으로 인한 밭작물 고사도 인삼 165.4㏊, 콩 16.2㏊, 옥수수 9.5㏊, 참깨 7.5㏊, 고추 7.1㏊ 등 모두 256.4㏊나 된다.
폭염 피해가 커지자 충북도는 3억4천만원의 예산을 긴급 투입, 영양제를 공급할 계획이지만 이미 회복 불능 지경에 이른 농가에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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