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년전 헤어진 남북 은행나무, 칠석에 다시 만나다(종합)

입력 2018-08-17 14:14
수정 2018-08-17 14:48
800년전 헤어진 남북 은행나무, 칠석에 다시 만나다(종합)

강화 볼음도서 민속행사…분단 이후 중단된 제례 복원 추진



(인천=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강화도 서편 외포리 선착장에서 직선거리로 약 15㎞. 지난해 다리가 놓인 석모도 너머에는 면적이 서울 여의도보다 두 배가량 넓은 작은 섬 볼음도가 있다.

조선시대 임경업 장군이 명으로 출국하던 중 풍랑을 만나 보름간 머물러 '볼음도'가 됐다는 이 섬의 명물은 수령(樹齡)을 800년으로 추정하는 거대한 은행나무.

높이 24m, 가슴 높이 둘레 9.8m. 언덕 위에서 마을을 지켜주는 듯한 이 신성한 고목은 북쪽으로 대략 10㎞ 떨어진 황해도 연안군 호남리에 있던 부부 은행나무 중 하나로, 800년 전 홍수로 뿌리째 떠내려왔다고 전한다.

볼음도와 연안군 주민들은 정월 그믐날이면 서로 연락해 각각 은행나무 앞에서 제(祭)를 올렸으나, 남북 분단으로 민속행사도 명맥이 끊겼다. 이후 볼음도에 있는 수나무는 천연기념물 제304호, 연안 호남중학교 뒷마당에 있다는 암나무는 북한 천연기념물 제165호로 지정됐다.



1950년대 중단된 볼음도 은행나무 민속행사가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는 칠석(음력 7월 7일)인 17일 오전에 다시 열렸다.

은행나무 옆에 무대를 설치하고 커다란 북한 암나무 사진을 걸어 800년 만에 부부 나무가 재회하도록 했다. 나무 앞에는 삼단 케이크와 꽃으로 장식한 생일상도 마련했다.

문화재청, 강화군, 한국문화재재단, 섬 연구소가 주최한 민속행사는 많은 주민을 초청해 마을 잔치처럼 치렀다.

사회를 맡은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이수자 박애리 씨는 "볼음도 은행나무와 연안군 은행나무는 남북 평화의 상징"이라며 "언젠가 다시 내 짝을 만날 거라는 믿음으로 두 나무가 버틴 것 아닌가"라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김종진 문화재청장은 "한국전쟁 이후 제가 중단되면서 두 나무는 이산가족이 됐다"며 "오늘은 의례를 남쪽에서 먼저 복원하는 날로 매우 뜻깊다"고 말했다.

민속행사는 강령탈춤 마당놀이로 시작해 강제윤 섬 연구소장의 '평화의 시' 낭독, 태평성대 공연으로 이어졌다.



백미는 한국화가 신은미 씨가 아쟁산조에 맞춰 북한 암나무를 그린 퍼포먼스. 보랏빛 고운 한복을 차려입은 신씨는 자유자재로 붓을 놀려 단번에 노란 단풍이 든 은행나무 그림을 완성했다.

박애리 씨의 쑥대머리 열창, 한국의 집 예술단 살풀이 공연에 이어 행사 대미를 장식한 풍물놀이 시간에는 마을 주민도 무대에 올라 흥겨운 감정을 나눴다.

볼음도 주민 오형단(59) 씨는 "어렸을 때 여름이면 은행나무 그늘이 좋고 시원해 많은 주민이 찾았다"며 "아이는 나무에 오르고, 어른은 누워서 잠도 자는 휴식처였다"고 말했다.

오씨는 "1970년대 바닷물을 막아 저수지를 만들기 전에는 노회한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건강하다"며 "오랫동안 열리지 않은 은행나무 민속행사가 재개돼 매우 기쁘다"고 덧붙였다.



전기선 문화재청 천연기념물과장은 "부부 은행나무의 아픔을 달래고, 마을 평화와 안녕을 기원하는 은행나무 제를 복원하고자 한다"며 "마을 주민들과 날짜를 정해 내년에도 은행나무 앞에서 민속행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 과장은 "장기적으로는 북한과 같은 날 은행나무 제를 지내거나 북한 주민을 초청해 행사를 치르는 방안도 추진하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김 청장은 "남북이 함께 문화유산을 조사해 민족 동질성을 회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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