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투사의 자손" 자부심 높지만 외면받는 현실은 '답답'
中 요동항일영렬연구실…독립유적지 돌보고 기념사업 지속 개최
"한 평생 독립운동에 바쳤으나 유공자 지정 안된 사례 상당수"
(선양=연합뉴스) 홍창진 특파원 = "중국 동북3성(랴오닝·지린·헤이룽장성)지방엔 한평생을 항일독립운동에 바친 영웅 열사를 조상으로 둔 사람이 많지만, 상당수는 알려지지 않았고 국가유공자 지정에도 제외된 사례가 많아 관심과 지원이 아쉽습니다."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일제 강점기에 고향 땅을 떠나 항일독립운동에 투신하기 위해 중국 동북지방(만주)을 찾은 선조들의 아들·딸, 손녀·손자는 "항일투사의 자손"이라는 자부심이 높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한국의 외면을 받는 현실이 답답하다고 입을 모았다.
공무원 출신으로 아버지가 독립운동에 가담했던 조선족 전정혁(69) 씨는 이런 현실을 극복하고자 지난 30여 년동안 중국 동북지방을 중심으로 항일운동을 펼친 조선인 항일 운동가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연구했다.
전 씨는 "부친 전병균은 19세이던 1924년 광저우(廣州) 황푸군관학교 6기로 졸업해 항일투쟁하고 독립군에 참가했으며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몸을 바쳤다"며 "조선족 항일투쟁사에 관심을 갖고 조사해보니 동북지방에서 항일운동했던 조선인 투사 200여 명이 국가유공자 지정을 받지 못한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이 증명됐고 가슴 아픈 역사를 한국 정부와 한국 동포들이 마음으로 애도해주기를 바란다"며 "1920년대 말 만주에서 조직된 독립군인 조선혁명군 투사 96명이 행방불명인데 어떻게 죽고 어떻게 실종됐는지 등도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1919년 3·1운동 때부터 독립운동에 참가해 랴오닝(遼寧)성 환런(桓仁)현을 위주로 활동한 박대호(1895~1947) 참의부(독립운동단체) 부장의 손자 박홍민(56) 씨는 "할아버지가 독립군으로 활동해 국가보훈처에 유공자 신청을 했으나 인정을 못 받아 아버지에 이어 2대째 신청을 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할아버지가 일제에 체포, 풀려난 기록제출을 보훈처가 요구해 20여 년째 중국 기록보관소에 신청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대한제국 말기 의병장 이진룡(1879~1918) 장군 외손자인 우승희(77) 씨는 "이진룡 장군이 1918년 감옥에서 순국하고 부인 우 씨도 자결한 뒤 일본놈들이 그 후손을 멸종시키려고 아들을 끌고 갔고 지금까지 소식이 없다"며 "장군의 직계 후손들 얘기를 알고 싶지만 알 길이 없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처럼 가슴 아픈 사연을 가진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3년 전 '요동항일영웅열사연구실'(이하 요동연구실)을 설립해 자체적으로 항일운동 유적을 돌보고 운동가들의 기념사업을 펼쳐왔다.
요동연구실은 지난 4월 '항일민족영웅 이진룡 장군 순국 100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하는 등 2007년 이후 10년이 넘도록 기념글짓기대회, 학술좌담회 개최 및 기념관 건립을 진행했다.
이밖에 동북지방 출신 독립운동가의 유공자 지정을 위한 자료준비를 지원하고 관련 유적 발굴도 돕고 있다.
요동연구실 주임을 겸하는 전정혁 씨는 "중요한 것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 투쟁한 역사가 동북 곳곳에 널렸으나 현재 비석, 묘지 등 유적이 파괴되고 손실돼 걱정된다"며 "우리 단체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역부족인 탓에 좀더 많은 사회단체의 참여와 경제적 후원이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독립운동가 가정은 모두 일제에 쫓겨 다녔기 때문에 본명 대신 별명을 사용했고 상당수 자료가 구술에 의존해 자신의 조상이 구체적으로 어떤 독립운동을 했는지 모르는 후손도 있다"며 "우리 단체가 각종 자료를 대조해 당시 항일활동을 밝혀내는 것도 큰 기쁨"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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