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식·여운형 참가 '극동민족대회' 동영상 발굴

입력 2018-08-15 06:10
김규식·여운형 참가 '극동민족대회' 동영상 발굴

반병률 교수, 1922년 1월 개회식 촬영 자료 공개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눈이 쌓인 러시아 모스크바역에 열차가 들어온다. 일본 사회주의 운동 개척자인 가타야마 센(片山潛)을 필두로 코트를 입은 사람들이 우르르 내린다.

이어 '전세계무산계급연합기래'(全世界無産階級聯合起來·만국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라는 한자 표어 아래에 '공산당은 원동(遠東·극동) 해방에 선봉대니'라는 한글이 적힌 현수막 뒤에서 사람들이 무언가를 발표한다.

이 사건은 1922년 1월 21일 모스크바 크렘린 소극장에서 개최된 '극동민족대회' 개회식.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정세를 논의한 자리인 미국 워싱턴회의에 맞서 국제공산당(코민테른)이 지휘한 이 행사에는 한국, 중국, 일본, 몽골 대표가 참석했다.

반병률 한국외대 사학과 교수는 한국 독립운동사와 사회주의 발달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으로 평가되는 극동민족대회 개회식 동영상 자료를 14일 동대문구 한국외대에서 독립운동가 기념사업회와 학계 관계자를 대상으로 공개했다.

반 교수가 지난 7월 러시아 사진·영상물 보관소에서 찾은 이 동영상은 5분 분량으로, 개회식 장면과 화면을 가득 채운 러시아어 자막이 번갈아 나온다.

본래 1921년 11월 러시아 이르쿠츠크에서 개최될 예정이었으나, 여러 차례 연기됐다가 이듬해 모스크바에서 열린 극동민족대회에는 김규식과 여운형을 비롯해 홍범도, 최진동, 문시환, 김단야, 최고려 등 한국인 50여 명이 참석했다.

반 교수는 "극동민족대회에 관한 사진은 익히 알려졌지만, 동영상은 학계에 처음 소개한다"며 "당대 사료 중에는 동영상이 매우 드문 편인데, 약 100년 전 자료임에도 화질이 좋다"고 말했다.

이어 "극동민족대회 개회식 동영상은 모스크바 각 극장을 순회하며 상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가타야마 센이 모스크바역에서 무리를 인솔하는 듯한 첫 장면에 대해 반 교수는 "당시 행사를 관찰한 중국인에 따르면 먼저 모스크바에 와 있던 가타야마 센이 마치 동양의 각 민족 대표와 함께 도착한 것처럼 연출하기 위해 기차에 올라갔다"며 "이어 장궈타오(張國燾) 등 각국 대표를 이끌고 플랫폼에 내려왔다"고 설명했다.

동영상에서는 지노비예프가 개회 선언을 한 뒤 "유럽, 미국의 프롤레타리아트와 동방 노력 대중의 동맹은 우리에게 결정적인 승리를 보장한다"고 말한다.

중간중간 삽입된 자막에는 "우리는 경험을 통해 혁명 러시아가 동방 인민의 유일한 해방자임을 알았다", "동방의 억압받는 인민들은 소비에트 권력의 슬로건을 중심으로 단결해야 한다", "한국의 빨치산들은 여러 해를 일본 제국주의와 투쟁한 전사들이다"라는 글이 연이어 등장한다.

동영상에는 나오지 않지만 장궈타오에 이어 연설한 김규식은 "모스크바는 원동의 피압박 인민을 팔을 벌려서 자기들의 혁명운동 속으로 환영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며 "여기에서 워싱턴은 세계 자본주의적 착취와 제국주의적 팽창의 중심지로 존재한다"고 말해 호응을 받았다.

반 교수는 "얼굴을 모르는 독립운동가의 용모를 동영상으로 확인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추후 국사편찬위원회나 독립기념관 같은 학술기관에 전달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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