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홍대 몰카' 여성에 징역형…'편파 판결' 주장 타당한가

입력 2018-08-14 18:03
수정 2018-08-14 19:22
[팩트체크] '홍대 몰카' 여성에 징역형…'편파 판결' 주장 타당한가

법조계 "2차 피해 심각하고 피해자가 처벌 원해…남성 피의자라도 같은 판결일 것"



(서울=연합뉴스) 김수진 기자 = 홍익대 인체 누드 크로키 수업에서 남성 모델의 나체 사진을 촬영해 유포한 혐의로 구속기소 된 여성 모델 안모(25)씨에게 징역 10개월이 선고되자 일각에서 '편파 판결'이라며 반발이 거세다.

이번 사건의 발단이 된 남성혐오 사이트 '워마드' 회원들은 일제히 '홍본좌(안씨) 무죄' 슬러그와 함께 "인권탄압이다", "무죄 탄원서를 제출하자"고 주장하는 글을 게재했다.

소셜미디어(SNS)에도 "범인이 남자였어도 같은 판결을 내렸을까?", "여성으로서 무력감이 느껴진다"는 등 실망감을 드러내는 글이 잇따랐으며, 청와대 게시판에도 '편파 수사'를 지적하는 국민청원이 올라왔다.



안씨에게 적용된 혐의와 같은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죄(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4조)'에 대한 기존 판결 사례와 법조계의 견해를 보면 안씨에게 유독 가혹한 처벌이 내려졌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한국여성변호사회가 지난 2011년 1월∼2016년 4월 서울 지역 관할 법원의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죄 사건 1심 판결문 1천540건을 분석하니 벌금형이 1천109건으로 72.0%에 달했고, 집행유예가 226건으로 14.7%로 두 번째였다.

선고유예가 7.5%(115건)로 뒤를 이었고, 안씨처럼 징역형을 선고받은 사례는 5.3%(82건)에 불과했다. 무죄(일부 무죄 포함)는 0.6%(9건)로 집계됐다.

이 수치만 보면 안씨가 징역형을 선고받은 것이 이례적인 것처럼 보이나 그가 불법 촬영 뿐 아니라 불특정 다수에게 유포한 혐의까지 받는 경합범이고, 피해자가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분석 대상 사건 중 촬영물이 유포된 경우는 66건이었는데 이 역시 1심에서 집행유예가 선고된 사건이 36.4%(24건)로 가장 많았지만, 징역형도 27.3%(18건)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했다. 벌금형은 28.8%(19건)로 나타났다.

촬영물이 유포되면 형벌이 가중되는 경향이 드러난 것이다.

특히 촬영물이 유포됐는데 피해자와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경우 선고유예가 0건이었고, 안씨 사례처럼 징역형이 선고된 경우가 17건으로 가장 많았다. 합의가 됐을 때는 실형 선고 비중이 훨씬 낮았다.

법조계에서도 피해자의 성기와 얼굴이 드러난 사진이 유포돼 2차 피해가 심각한 데다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는 만큼 징역형이 과다하고 볼 수 없다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한 지방법원 부장판사는 "촬영물이 유포됐을 때 형이 가중되는 게 당연하고, 피해 당사자의 의사가 판결에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이번 판결을 편파적이라고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세원의 김영미 변호사도 "합의가 되지 않았고, (촬영물) 영구삭제가 불가능해 피해가 사실상 영원히 지속하는 상황"이라며 "피의자가 남성이었어도 같은 판결이 나왔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여자친구 나체 사진 일베(일간베스트) 게재 사건'을 안씨에 대한 편파 판결의 근거 중 하나로 삼는데 상황이 전혀 다르다.

이 사건 피고인인 20대 남성은 여자친구와 성관계 중 동의를 받지 않고 뒷모습을 촬영해 일베 게시판에 올린 혐의로 지난 6일 부산지법에서 벌금 200만원의 선고유예형을 받았다.

부산지법 관계자는 "이 사건의 경우 여자친구가 처음에 화가나 고소장을 제출했으나 재판 과정에서 10회 이상 탄원서를 제출하며 남자친구에 대한 선처를 요청했고, 사진에 등 쪽이 찍혔는데 어둡고 흐릿해 누구인지 알기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다만,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 범죄가 2005년 341건에서 10년 만인 2015년 7천730건으로 15배 늘어나는 등 스마트폰 보급을 기점으로 이러한 유형의 범죄가 급증하고 있는 만큼 구체적인 양형 기준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 김현아 변호사는 "카메라 촬영 범죄와 같은 디지털 성폭력의 경우 아직 구체적인 양형기준이 없다"면서 "합의 유무, 피해 정도, 유포 여부, 촬영물 삭제를 위한 가해자의 진지한 노력 등이 반영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해야 편파 논란도 없앨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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