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동·길원옥 할머니, 한 인간으로 바라봤으면"
일본군 위안부 피해 두 할머니 인터뷰, 증언소설 펴낸 김숨 작가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김복동·길원옥 할머니 두 분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기도 하지만 한 인간이잖아요. 한 인간으로서 이분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필요한 것 같아요.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타인들과 서로 공감하고 교제하듯이 이분들과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김복동(92)·길원옥(90) 할머니를 인터뷰해 이들의 이야기를 '증언소설' 형식으로 펴낸 김숨(44) 작가는 13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작가의 말처럼 김복동 할머니의 증언소설 '숭고함은 나를 들여다보는 거야'(현대문학)와 길원옥 할머니의 증언소설 '군인이 천사가 되기를 바란 적 있는가'(현대문학)를 읽고 나면 할머니들을 더 가깝게 느끼게 되고 이들이 겪은 일을 역사적 사건이 아닌 현재의 생생한 아픔으로 공감하게 된다.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8월 14일)을 맞아 관련 책을 읽어보려는 독자들에게 가장 먼저 권할 만한 책이다.
작가가 두 할머니를 만나 이들의 증언을 기록하게 된 것은 올해 초 김동희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관장의 요청을 받고서다. 작가는 이미 2년 전 위안부 피해자들의 종합적인 기록을 바탕으로 한 소설 '한 명'을 냈고, 지난달에는 피해자 이야기를 위안소에 갇혀있는 소녀 시점으로 쓴 소설 '흐르는 편지'를 내놓기도 했다. 누구보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깊은 관심을 둔 작가이기에, 아직도 온 힘을 다해 싸우고 있는 두 할머니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데 적임자라고 할 수 있었다.
"올 초에 김동희 관장님이 연락해 오셨어요. 김복동 할머니께서 수술하시고 항암치료를 받으시며 (건강이) 많이 안 좋으실 때였죠. 시간이 얼마 안 남았으니 할머니에 대한 책을 내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서로 고민하다가 제가 소설 쓰는 사람이니까 문학적으로, 소설이라는 그릇으로 담아낼 수 있으면 해 보겠다고 했죠. 그러고 나서 인터뷰 날짜를 바로 잡았어요. 1월부터 인터뷰를 진행해서 두 할머니를 총 20여 차례 만났죠. 같이 하룻밤을 자면서 이틀 동안 진행하기도 하고, 식사도 같이하고 그러면서 얘기를 나눴습니다."
김복동 할머니는 노쇠한 몸으로 암과 싸우느라 하루하루 고통을 이겨내기가 힘든 모습이었다고 했다. 길원옥 할머니는 기억이 온전치가 않아 이야기를 이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작가는 눈이 거의 보이지 않는 김 할머니에게 "눈이 보이면 뭐가 가장 보고 싶으시냐"는 등의 질문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길 할머니에게는 같은 질문을 여러 번 반복해서 제대로 된 대답이 나오도록 이끌어야 했다.
"김복동 할머니는 항암치료 중이실 때 인터뷰를 진행해서 사실 대화가 불가능한 상태였어요. 본인 스스로 감당하기 힘든 상황에서 뭔가 말씀하시는 것이 불가능하거든요. 그러다 보니 투병하는 할머니 모습을 제가 묘사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다 '병과의 싸움을 혼자 해야 하니 외롭지 않으시냐'는 질문을 드렸더니 할머니께서 우시더라고요. 그 울음과 함께 벽을 허무시고 이야기들을 들려주셨어요. 예전에 어디서도 하지 않으신 전쟁 이야기, 사랑 이야기 같은 것들을요."
김복동 할머니는 이렇게 말한다.
"이해할 길이 없었어./전생이 아니면, 전생에 지은 죄가 아니면,/내가 겪은 일들을." (29쪽)
"처음에 내가 엄마에게 말했을 때 거짓말이래./그런 일을 겪고 사림이 살 수는 없다며./그런 일, 내가 겪은 일." (44쪽)
"숭고함은 나를 들여다보는 거라는데./멀고 먼 곳에,/홀로 떠 있는 그녀./거기 가서야 알았어./군복 만드는 공장이 아니라 군인 받는 공장이라는 걸."(72쪽)
"내 소원은 자식 하나 낳는 거./새벽마다 찬물로 목욕하고 절에 가 불공을 드렸어./군인 받는 공장에서 보름에 한 번꼴로 맞았던 606호 주사가 불임 주사였던 걸 모르고./스무 살이 되기도 전에 내 몸이 아기를 가질 수 없는 몸이 되었다는 걸 모르고." (145∼146쪽)
작가는 "90이 넘게 살아온 할머니들이니 평균보다 긴 생을 살아낸 한 인간으로서 들려주실 수 있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려고 했다. 위안소 경험을 넣으려고 하긴 했지만, 참고 있는 말들이나 내면에 끌어안고 있는 말들을 끌어내 보자는 생각으로 질문을 드렸다"고 했다.
할머니들의 증언을 담았지만, 작가가 의도된 질문을 통해 흐름을 만들어 나가고 그 대답을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라 재구성·재편집했다는 점에서 소설적인 요소가 들어갔다.
작가는 이번 작업을 통해 스스로 위로받고 치유되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제가 그동안 '한 명'과 '흐르는 편지'를 쓰고 나서 많은 분에게 '쓰느라 힘들었겠다'는 말을 많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할머니들을 만나 뵙고 인터뷰하면서, 물론 그 과정이 쉽지 않았지만, 정작 제가 힘들었던 부분들이 치유되는 느낌을 받았어요. 할머니들을 보면서 한 인간이 가진 치유력이 대단하구나, 그런 감탄을 할 때가 있거든요. 두 분 할머니는 훼손된 존엄성을 스스로 회복한 분들이잖아요. 끝까지 지키며 사시려고 노력하시는 것 같아요. 할머니들이 굉장히 고우세요. 그런 일을 당했다는 게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요. 그런 할머니들을 곁에서 지켜보고 이야기를 듣는 것이 저 역시 치유되는 경험이어서 귀한 시간이었어요."
그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역사는 지나간 역사가 아니라 현재의 역사란 생각을 한다"며 "할머니들이 아직 진정한 사과를 받지 못한 것을 굉장히 속상해하시는데, 아마도 해결될 때까지 당신들께서 말씀하셔야 한다는 강한 의식으로 초인적인 힘을 내고 계신 게 아닌가 싶다"고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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