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각 사퇴 거부 설정 총무원장…16일 중앙종회가 고비

입력 2018-08-13 15:46
수정 2018-08-13 16:07
즉각 사퇴 거부 설정 총무원장…16일 중앙종회가 고비

불신임안, 의결되어도 부결되어도 혼란은 가중될 듯



(서울=연합뉴스) 강종훈 기자 = 애초 16일 이전 사퇴 방침을 밝힌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설정 스님이 13일 사퇴 시점을 올 연말로 미루면서 조계종 사태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즉각 퇴진을 사실상 거부한 것이다.

애초 설정 스님은 오는 중앙종회 임시회가 열리는 16일 이전 퇴진 방침을 간접 경로를 통해 밝힌 바 있다.

종단 안팎의 퇴진 요구를 수용하는 듯했던 설정 스님이 즉각 퇴진 의사를 번복함에 따라 조계종의 혼란은 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나아가 설정 스님이 이날 기자회견에서 밝힌 대로 연말까지 총무원장을 유지하며 각종 의혹을 해소하고 조계종 개혁을 추진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무엇보다 추진동력을 갖추었느냐에 대한 회의가 일기 때문이다.

퇴진을 거부함에 따라 일단 오는 16일 중앙종회에서 총무원장 불신임안이 상정될 것으로 보인다.

중앙종회에서 불신임안이 통과되고, 22일 개최되는 원로회의에서 이를 인준하면 설정 스님의 총무원장직은 박탈된다.

조계종 총무원장이 탄핵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는 셈이다.

조계종 종헌종법에 따르면 총무원장 불신임 의결은 중앙종회 재적 의원 3분의 1 이상이 발의하고, 무기명 비밀투표를 거쳐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통과된다.

원로회의에서는 총무원장 불신임에 대해 재적자 과반수가 찬성하면 인준된다.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총무원장 불신임안이 의결될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현재 종회의 구성상 전 총무원장 자승 스님 측이 다수 포진한 데다, 이번 퇴진 거부가 조계종적폐청산을 주장하는 측보다는, 어떤 면에서는 자승 스님 측을 겨냥한 것이라는 분석이 많기 때문이다.

설정 스님은 지난해 10월 총무원장 선거에서 자승 스님 측의 지지를 받아 당선됐지만, 지금은 서로 대립하는 관계가 됐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설정 스님은 애초 "마음을 비웠다"고 사퇴 방침을 정했지만, 최근 내부의 거센 퇴진 요구에 실망감을 표하며 입장 변화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무엇보다 설정 스님은 '우군'이라 생각한 자승 전 총무원장 측이 이번 사태를 그 자신이 헤쳐나가는데 도움을 주기는커녕 사퇴를 종용하거나 방조했다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점에서 즉각적인 사퇴를 거부한 13일 기자회견에서 설정 총무원장이 말한 "종단 안정을 위해 스스로 사퇴하고자 했으나, 기득권 세력에 의해 은밀하고도 조직적으로 견제되고 조정되는 상황"이라는 대목이 의미심장하다는 분석이 많다. 그가 말한 '기득권세력'이 전후 문맥으로 비춰볼 때 조계종단 바깥에서 종단 적폐청산을 요구하는 측이 아닐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기득권세력이란 아무래도 자신을 총무원장으로 옹립한 자승 전 총무원장 측을 지칭한 듯한 뉘앙스를 보인다.

은처자 의혹 규명을 위한 유전자검사에 직접 나서고 총무부장을 새로 임명한 설정 총무원장의 대응은 자승 전 총무원장을 겨냥한 것이 아니냐 하는 시각이 대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설정 총무원장이 즉각 사퇴를 거부함으로써, 그의 퇴진을 둘러싼 묘한 역설도 빚어지기 시작했다. 종단 적폐청산을 요구하면서 설조 스님 장기 단식을 끌어낸 종단 외부 소위 개혁세력과 종단 내부 다수파인 자승 전 총무원장 측이 적어도 설정 총무원장 퇴진이라는 목표는 같이하는 상황이 초래된 것이다.



소위 적폐청산 세력이 '청산' 대상으로 삼은 쪽은 실상 설정 총무원장이라고는 보기 힘들다. 이들이 보기에 설정 총무원장은 자승 전 총무원장의 대리인이다. 이들에게 설정 퇴진은 자승 체제를 붕괴케 하는 시작에 불과할 수 있다. 설정 스님을 퇴진케 하고, 이를 시발로 기존 종단 권력을 청산하겠다는 더 원대한 목표가 있었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한데 그렇게 싸운 양측이 이제는 자칫 같은 목표를 내걸고 당분간은 같은 길을 걷는 듯한 상황이 초래된 것이다.

나아가 중앙종회에서 불신임안이 부결된다고 해도 조계종의 혼란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조계종 내부 기반이 튼튼하지 않은 설정 스님이 올 연말까지 안정적으로 총무원장직을 수행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중앙종회, 교구본사주지협의회, 비구니 스님 등 종단 내부에서도 줄줄이 사퇴를 요구했고, 종정 진제 스님도 최근 교시를 통해 설정 총무원장이 용퇴 의사를 표명했다고 밝힘으로써 사실상 퇴진을 압박하는 모양새가 됐다.

설정 스님에게 즉각 퇴진을 요구해 16일 이전에 퇴진하겠다는 방침을 받아낸 교구본사주지협의회는 14일 설정 스님의 퇴진을 재차 촉구하는 입장문을 낼 예정이다.

교구본사주지협의회의 한 중진 스님은 "연말에 퇴진하겠다는 것은 기만이나 마찬가지이며 어르신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안타깝다"며 "개혁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신뢰를 잃어버린 집행부의 개혁에 힘이 실리겠느냐"고 말했다.

오는 22일 원로회의에서 어떤 논의가 이뤄질지도 주목된다. 원로회의는 중앙종회 해산권을 가지고 있다.

전국선원수좌회와 조계종을 걱정하는 스님들의 모임 등은 직선제 도입 등을 주장하며 오는 23일 전국승려대회를 열 계획이다.

이를 지지하는 조계종적폐청산시민연대 등은 비상대책위원회 구성, 중앙종회 해산 등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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