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감 커진' 리커창…베이다이허 회의 중 이례적 외빈 접견

입력 2018-08-10 11:56
'존재감 커진' 리커창…베이다이허 회의 중 이례적 외빈 접견

과기영도소조 조장도 꿰차…'지위 이상설' 왕후닝은 공개 활동



(상하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미중 무역전쟁으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1인 독주 체제가 시험대에 올랐다는 관측 속에서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미미했던 '이인자' 리커창(李克强) 총리가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 기간 부쩍 커진 존재감을 드러내 눈길을 끈다.

10일 인민일보 등 관영매체 보도에 따르면 리 총리는 지난 8일 베이다이허에서 제73회 유엔총회 의장 당선인 마리아 페르난다 에스피노사 에콰도르 외교부 장관 접견했다.

중국 정가에서는 전·현직 수뇌부들이 여름 휴가를 겸해 중요 현안을 논의하고 노선을 정하는 8월 베이다이허 회의 개최 기간 이례적으로 현직 총리가 단독으로 공식 외빈을 맞은 점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가을의 연례 공산당 중앙위원회 전체회의를 앞두고 사전 정지 차원에서 열리는 베이다이허 회의 기간에는 상무위원급 지도자의 개별 활동이 관영 매체 보도로 공개되는 일은 극히 드물다.

후진타오(胡錦濤) 전 국가주석이 2005년 8월 4일 베이다이허에서 2차대전 종전 60주년을 기념해 항일전쟁 참전 장군을 만난 것을 마지막으로 10여년간 상무위원급 인사의 개별 활동 사례가 보도된 적이 없다.

시 주석의 경우도 2012년 18차 당대회 이후 최고 지도자로 등극하고 나서 베이다이허 회의 기간 단독 활동이 보도된 사례가 없다.

당 선전부서의 엄격한 보도 지침에 따라 최고 지도부의 일거수일투족을 전하는 중국에서 보도 형식이나 관행 변화는 실질적인 권력 지형의 변화를 상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다.

아울러 리 총리는 최근 미국의 무역 공세에 맞서 출범한 국가과기영도소조 책임자를 맡아 주목을 받았다.

중국 국무원은 기존 '국가과기교육영도소조'를 '국가과기영도소조'로 개편하고 리 총리를 조장, 류허(劉鶴) 부총리를 부조장으로 선임한다고 최근 발표했다.

미국이 중국의 첨단 제조업 육성책인 '중국 제조 2025'를 정조준하며 압박을 강화하는 가운데 나온 조처다.

과학기술 발전 전략 수립, 중대 정책 연구·심의, 국무원 각 부서와 지방 간 과학기술 중대 사안에 관한 협업 조율 등을 주요 임무로 하는 이 소조의 조장은 리 총리가, 부조장은 미중 무역 협상 책임자인 류허(劉鶴) 부총리가 각각 맡았다.

연임 제한을 폐지하는 등 1인 체제를 확고히 한 시 주석이 앞서 중앙재경영도소조를 비롯한 경제 분야 조직까지 장악한 상황에서 미중 간 무역전쟁 와중에 최대 현안으로 부상한 기술 육성 문제를 책임질 조직의 장을 리 총리에게 양보한 점이 눈길을 끈다.

2012년 18차 당대회 이후 시진핑과 리커창이 각각 국가주석, 총리를 나눠 맡을 당시만 해도 앞으로 중국이 국가주석과 총리가 권한을 양분하는 '투 톱' 체제로 운영될 것이라는 관측이 무성했다.

그러나 집권 이후 시 주석은 반부패 사정을 무기 삼아 덩샤오핑(鄧小平) 이래 중국에서 정착된 집단 지도체제를 와해하고 1인 독주 체제를 구축하면서 마오쩌둥(毛澤東) 이래 가장 강력한 권력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직은 단편적 현상에 불과하지만 최근 리 총리의 존재감 부각은 시 주석 1인 체제에 대한 당 내외 비판이 고개를 드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더욱 눈길을 끈다.

이런 가운데 올해 베이다이허 전문가 좌담회의 주재자로 나서지 않아 홍콩 언론 등 일각에서 실각설·역할 축소설 등이 제기된 왕후닝(王호<삼수변+扈>寧) 상무위원은 지난달 말 열린 공산당 정치국 회의 등 여러 외부 행사에 참석한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 베이다이허 회의 때까지는 선전 담당 상무위원인 류윈산(劉雲山)이 전문가 초정 좌담회를 주관했는데 올해는 이 같은 관례가 깨지고 한 등급 낮은 정치국원인 천시(陳希) 조직부장이 좌담회를 주관하면서 왕 상무위원이 '배제'된 게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중화권 매체인 둬웨이(多維)는 작년 물러난 류윈산이 맡던 중앙당교 교장 자리가 상무위원 후임자인 왕후닝이 아니라 천시 조직부장에게 건너갔다고 지적하면서 베이다이허 전문가 좌담회는 인사·교육 분야 책임자가 나서는 행사라는 점에서 왕 상무위원의 '부재'만 놓고 이상 징후로 보기는 어렵다고 분석했다.

한편, 둬웨이는 관영 신화통신이 베이다이허에 초청된 전문가 좌담회가 마무리됐다는 기사를 9일 송고했다면서 이는 비공개로 진행되는 여름 베이다이허 회의가 사실상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신호라고 해석했다.

시 주석 시대에 접어들어 베이다이허 회의의 역할과 의미가 크게 축소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여전히 워크숍을 겸한 전·현직 최고 지도부의 친교 무대로서 주목받고 있다.

ch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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