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일변도 거리명·역명은 그만"…세계 곳곳에서 '반기'
네덜란드에 '비욘세路' 등장…NYT "주목받지 못한 여성' 부고기사
(서울=연합뉴스) 김기성 기자 =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로 남성만 있는 게 아니라며 여성을 부각하려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일고 있다.
네덜란드에서는 남성 일변도의 거리 이름을 바꾸려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으며, 프랑스 파리에서는 지하철역 이름에 여성 명사를 넣으려는 캠페인이 벌어졌다.
최근 네덜란드 곳곳에서는 존경을 받는 여성들을 기려 거리명을 그들의 이름으로 바꾸려는 작업이 비공식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9일 보도했다.
이런 움직임은 최근 한 뉴스 웹사이트 조사 결과, 암스테르담과 위트레흐트, 흐로닝언의 거리들 중 12%만이 여성이름에서 빌려온 것으로 드러나 촉발됐다. 특히 빌려온 여성들 이름조차 종종 여신들이거나 저명 남성들의 부인들이었다.
이같은 캠페인을 벌이는 페미니스트 단체(De Bovengrondse) 측은 "거리이름은 우리 사회가 누구를 존경할지를 보여주는 결정판"이라며 바꿔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 단체는 최근 암스테르담에서 연 회의에서 우선 거리에 이름을 올릴 여성 12명을 추려냈다.
이들 중에는 첫 여성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기록될만한 천재 수학자 에이다 러브레이스(1815∼1852), 네덜란드 레지스탕스 요원인 마리 아너 텔레헌(1893~1976), 팝스타 비욘세가 포함됐다.
비욘세의 경우 페미니즘과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지위를 자신의 음악 활동의 주제로 삼았다는 점이 반영됐다. 암스테르담의 중앙부의 주요 도로인 로킨에는 이미 '비욘세로(路)'(Beyonce Boulevard)라는 표지판이 붙었다.
다만, 거리 개명 작업은 기존의 남성들을 강제로 퇴출하는 형식을 피하고자 이미 설치된 표지판 아래에 새 이름 표지판을 붙이는 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 운동의 주목적이 기존의 것을 바꾸기보다는 개발 등에 따라 새 거리명을 지을 때 지방당국이 여성을 우선 고려하도록 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운동을 주도한 산티 반 덴 툰은 현지 언론에 "역사를 남성들이 써온 만큼 어쩔 수 없다는 말들이 있지만 중요한 여성들도 있다"며 이 운동이 사소해 보일 수도 있으나 누구든 거리에서 지내는 만큼 이해하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공공장소에 쓰인 이름은 남성이 압도적이라는 주장 아래 여성의 이름을 더 많이 쓰도록 하는 움직임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도로나 역 이름을 지을 때 유명인사 이름에서 따오는 전통을 가진 프랑스에서도 파리 지하철 16개 노선의 303개 역 중 단지 4개만이 여성이름(외국인 포함)을 빌려온 것으로 드러난 바 있다.
이에 따라 신설되는 파리 지하철역 2개의 작명 작업에 여성이름을 넣자는 운동이 최근 벌어진 바 있다.
이밖에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인류 역사에 업적을 남겼으면서도 활동상이 제대로 조명되지 않았던 여성 15명의 부고 기사를 뒤늦게 실어 눈길을 끌었다.
이 신문은 1851년 이후 자사 부고기사 수 천 건을 분석한 결과, 여성은 5명에 1명꼴로 대부분이 백인 남성에 대한 기록이었다며 러브레이스를 비롯해 중국 근대 시인 겸 여성혁명가인 추진(秋瑾·1875∼1907) 등을 포함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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