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F, '상아거래 허점' 알리려 가짜 액세서리 브랜드로 '낚시'
(방콕=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세계적 비영리 환경보전기관인 세계자연기금(WWF) 싱가포르 지부가 상아(象牙) 거래 금지에 관한 법률의 허점을 알리기 위해 가짜 상아 액세서리 브랜드를 활용했다고 현지 언론이 8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에는 아이보리 레인(Ivory Lane) 이라는 이름의 계정이 등장했다.
계정에는 상아로 만든 액세서리 제품을 8월 30일부터 싱가포르에서 온라인 판매한다는 예고성 메시지와 함께 제품을 홍보하는 이미지도 게재됐다.
또 자연에서 얻은 고급 재료인 상아로 만든 최상의 컬렉션을 공개한다면서, 이벤트에 페이지를 팔로우하면 현대적이고 럭셔리한 제품을 소개받을 수 있다는 홍보성 글도 올라왔다.
이 광고 계정은 곧바로 네티즌들의 강력한 비난에 직면했다.
'비열하다', '역겹다', '천박하다' 등의 비난 글이 계정을 도배했다.
비난이 쏟아지자 이번에는 "우려를 이해하지만, 우리가 사용하는 상아는 1990년 이전에 획득한 것으로 싱가포르에서는 아무런 법적인 문제가 없다"는 해명이 나왔다.
비난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한 이용자는 "그래도 상아는 상아다. 상아 때문에 코끼리가 죽었다. 오래된 상아라도 그걸 판매하는 건 상아 시장을 계속 유지하게 하는 것이며, 결국 코끼리를 죽이는 행위다"라고 비난했다.
많은 SNS 이용자들을 분노케 한 이 홍보 계정은 그러나 어이없게도 WWF 싱가포르 지부가 상아 거래를 금지한 법률의 문제를 알리기 위해 만든 가짜로 드러났다.
WWF 싱가포르는 8일 오전 같은 계정에 "아이보리 레인은 싱가포르 야생동물 관련 법률의 단점을 홍보하기 위해 우리가 만든 가짜 브랜드로, 어떠한 상아 제품도 보유하거나 팔지 않는다"며 "목소리를 빌려준 여러분께 감사의 뜻을 표한다"고 밝혔다.
WWF는 이어 "브랜드는 가짜지만 제기된 이슈는 진짜다. 싱가포르에 있는 40여 개 업체가 여전히 상아 제품을 판다"고 덧붙였다.
이 해명으로 상아 거래는 가짜임이 확인됐지만, 네티즌들을 속인 WWF 싱가포르 지부의 행위에 대해서는 비난과 칭찬이 엇갈리고 있다.
캠페인이 무례하고 유치했으며 뒷맛이 개운치 않다는 비난이 쏟아지는가 하면 일각에서는 '멋진 마케팅'이라는 찬사도 나오고 있다.
WWF 싱가포르 관계자는 채널 뉴스 아시아에 "싱가포르에는 아직도 상아 거래상이 활동한다. 전 세계적으로 여전히 진행 중인 상아 거래 때문에 아프리카코끼리가 25분에 1마리꼴로 죽는다"며 "싱가포르 국민은 그 어떤 환경단체보다 더 큰 목소리를 내주었다"고 말했다.
1973년 체결된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 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은 코끼리 등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의 국제거래를 규제하고 있다.
그러나 싱가포르에서는 1990년 이전에 획득한 오래된 상아의 경우 거래금지 대상에서 제외된다.
meola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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