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의 야심작 '일대일로' 프로젝트, 부채 문제 '암초'

입력 2018-08-08 11:37
시진핑의 야심작 '일대일로' 프로젝트, 부채 문제 '암초'

FT "파키스탄, 라오스 등 주요 대상국가 부채 문제 심각"

"1천814개 프로젝트 중 270개 차질…中 정부도 위험사업 점검"

(서울=연합뉴스) 정재용 기자 =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야심 차게 추진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가 부채 문제라는 '암초'를 만났다.

일대일로 프로젝트 대상국가들의 국가부채가 심각한 상태인 데다 일대일로 사업을 진행하는 중국 국영기업들의 부채도 잠재적인 위협 요소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대일로는 중국 주도로 전 세계의 무역·교통망을 연결해 경제 벨트를 구축하려는 구상으로, 시 주석이 집권 후 주요 정책으로 추진하고 있다.

시 주석은 일대일로를 '세기의 프로젝트'로 지칭하면서 적극적인 추진 의지를 보인다.

중국은 현재 세계 78개 국가에서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일대일로 프로젝트는 주로 중국이 중국 국유 은행을 통해 해당 국가에 자본을 빌려주고 중국 국유 기업들을 통해 사회간접자본(SOC)을 구축해 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비판론자들은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가 중국의 부채 문제를 해외로 확산하는 전달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고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가 8일 보도했다.

FT에 따르면 파키스탄, 스리랑카, 라오스, 말레이시아, 몬테네그로 등에서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부채 문제와 관련한 논란이 일고 있다.

논란은 일대일로 프로젝트 대상국가들이 중국에서 빌린 막대한 부채를 지불할 능력이 있느냐는 점과 중국이 자금을 대는 프로젝트의 사업비가 과연 적정 수준에서 책정됐느냐에 집중된다.

미국 자문회사인 RWP 자문그룹의 앤드루 대븐포트 수석 오퍼레이팅 오피서는 "프로젝트 대상국가의 신용도는 낮지만, 중국이 빌려준 돈은 매우 많다는 불일치 때문에 프로젝트가 지연되거나 정치적 불안 요인이 발생하고, 비리 의혹이 제기된다"고 지적했다.

FT가 일대일로 프로젝트 대상국가 78개국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들 국가의 상당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국가 리스크 평가(National risk assessment·NRA)에서 최하위 수준으로 분류한 국가였다.

OECD는 지난 3월 NRA 보고서를 발간했다. NRA는 국가의 전반적인 리스크를 평가하는 체계로, 경제 상황은 물론, 자연재해, 노동파업, 사이버공격, 조직적인 범죄, 관리체계 실패 등의 분야를 포괄한다.

국가 리스크가 가장 크면 7, 가장 작으면 0으로 표시한다.

FT의 분석에 따르면 일대일로 프로젝트 대상국가 78곳의 국가 리스크 평균치는 5.2로 나타났다. 이는 신흥시장 국가의 평균치 3.5보다 훨씬 높은 수치라고 FT는 설명했다.

국제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의 조사결과도 비슷하다.

무디스는 일대일로 프로젝트 대상국가 78곳의 평균 신용 등급을 'Ba2'로 평가했다. Ba2는 투자 부적격 또는 채무불이행 위험이 있는 수준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국가가 국가 리스크 7인 파키스탄이다.

파키스탄은 최근 외화 부족으로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리서치 회사인 캐피털 이코노믹스의 이코노미스트인 알렉스 홈스는 "파키스탄은 지급위기 상태를 눈앞에 두고 있다"면서 "이는 일대일로 프로젝트와 관련한 중국으로부터 자본재 수입의 급격한 증가가 주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은 파키스탄에서 총 620억 달러(약 69조 원) 규모의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이는 중국이 해외에서 추진하고 있는 일대일로 프로젝트 가운데 가장 큰 규모다.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주요 대상국 가운데 한 곳인 캄보디아도 무역적자가 심각한 상태다.

일대일로 추진에 필요한 자본재 수입이 급증하면서 캄보디아의 무역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10% 수준까지 확대됐다.

만일 외국인 투자가 줄어들게 되면 캄보디아는 외화 부족 사태에 빠질 것이라고 홈스는 경고했다.

스리랑카 정부는 남부 함반토타 항을 중국으로부터 돈을 빌려 조성했지만 빚을 갚지 못하자 작년 중국에 임차형식으로 항구 운영권을 99년간 넘겨 주었다.

말레이시아의 일대일로 프로젝트는 이들 국가와는 다른 이유에서 제동이 결렸다.

지난 5월 출범한 마하티르 모하맛 정부가 '불평등 계약'이라는 이유로 약 230억 달러 규모의 동부해안철도(ECRL)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RWA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2013년 이후 착수된 총 1천814개 일대일로 프로젝트 가운데 270개가 차질을 빚고 있다.

이는 전체 일대일로 프로젝트 가운데 사업비 기준 약 32%를 차지한다.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중국 국영기업들의 부채 문제도 잠재적인 위협 요소로 꼽힌다.

FT에 따르면 중국교통건설(中國交通建股·CCCC)을 비롯한 일대일로 프로젝트 참여 중국 기업들은 일대일로에 참여하는 비중국 기업보다 부채 비율이 거의 4배가량 높다.

익명을 요구한 한 중국 관리는 "중국의 거대 국영기업은 공산당원인 정치인이 경영을 맡고 있다"면서 "이들은 막대한 비용이 드는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뛰어들어 공산당의 보스들로부터 정치적 충성심에 대한 보상을 받으려 한다. 이들에게 부채는 관심사가 아니다"고 말했다.

하지만 중국 당국이 국유 기업의 부채 축소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해외에서 추진 중인 일대일로 사업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중국 당국은 이미 국유자산감독위원회(SASAC)의 관리를 받는 국유 기업에 오는 2020년까지 부채 비율을 대폭 낮출 것을 지시한 바 있다.

ICBC스탠더드은행의 지니 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이 국내적으로 부채 줄이기 캠페인을 가속하면서 정책의 초점은 부채의 양보다는 부채의 질에 맞춰질 것"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중견 간부도 중국 당국이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점검해 위험도가 높은 사업의 경우 손을 빼거나 신규 투자를 줄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jjy@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