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예권 "성숙한 열정과 아이 같은 순수함, 다 갖고 싶어"

입력 2018-08-07 06:15
선우예권 "성숙한 열정과 아이 같은 순수함, 다 갖고 싶어"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 이후 스타 자리매김…"첫 피아노 샀어요"

광복절 임동혁과 듀오·11월 게르기예프와 한무대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저 처음으로 피아노를 샀어요. 원래는 학교 연습실 피아노로 연습했었죠. 동혁이 형(피아니스트 임동혁)네 집에서 연습하기도 했었는데…. 어린 시절부터 너무나도 제 피아노가 갖고 싶었어요."

지난 6일 서울 종로구 연합뉴스 사옥에서 만난 피아니스트 선우예권(29)은 작년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 이후 근황을 묻는 첫 질문에 해사한 미소로 이처럼 답변했다.

18세 때 참가한 미국 플로리다 국제콩쿠르부터 작년 반 클라이번 콩쿠르까지 7개 국제콩쿠르 우승을 거머쥐며 '콩킹(콩쿠르 킹)'이란 별명까지 얻은 그는 여태껏 한 번도 그랜드 피아노를 가져본 적이 없다.

가족이 사는 한국 집에 피아노가 있긴 하지만 일반 가정집에 주로 놓인 평범한 업라이트 피아노. 전문 연주자 것은 아니었다. 그 많은 콩쿠르에 도전한 이유로 "생활비로 쓸 상금이 필요했다"고 답할 정도로 그는 경제적으로 그리 풍족하지 못했다.

그의 첫 피아노는 세계적 브랜드인 스타인웨이의 그랜드 피아노. '억' 소리 나게 비싼 가격을 자랑하는 브랜드지만 고급스러운 음색으로 유명 공연장과 연주자는 대개 이를 사용한다.

그가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콩쿠르 우승하고 변했다고 오해하시려나요. 근데 여태까지 번 돈 대부분을 이번 피아노 구매에 거의 다 쓴 거거든요. 그만큼 어린 시절부터의 꿈이었어요. 여러 피아노를 쳐본 뒤에 저랑 가장 잘 맞는 것으로 골랐어요. 두터운 음색이 매력적인 피아노도 있었지만, 제가 고른 피아노는 섬세하면서도 빛이 나는 음색이 특징이에요."

피아노 구매를 '근황 1번'으로 꼽았지만, 그의 스케줄 표는 여전히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빼곡하다. 올해만 세계 여러 도시에서 100회 이상 연주회가 잡혔다.

"그래도 7월에는 조금 수월했어요. 이틀 정도씩 쉴 시간도 있었어요. 바쁠 때는 하루 이동해서 그 다음 날 연주, 바로 이동해 또 그 다음 날 연주 일정을 소화해야 해요. 그럴 때가 조금 스트레스가 되죠."

그러고 보니 콩쿠르 당시보다 홀쭉해진 얼굴이 눈에 띈다. "6~7㎏ 빠진 것 같아요. 특별히 다이어트를 한 건 아닌데 스케줄이 많아지다 보니까 저절로 빠졌어요.(웃음)"



국내에서도 굵직한 연주회를 여럿 앞두고 있다. 오는 11월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러시아 음악 차르'로 통하는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지휘하는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협연한다.

"올해 제일 기대되는 일정 중 하나입니다. 엄청난 카리스마와 짙은 감정을 보여주는 지휘자시잖아요. 저와 잘 맞는 프로그램이라 더 기대합니다."

가깝게는 오는 15일 절친한 친구이자 유명 피아니스트인 임동혁과 듀오 무대도 연다. 한국 클래식 스타 10팀이 총집결하는 '스타즈 온 스테이지' 중 하나로 선보이는데, 이 두 연주자의 만남은 이번 공연 하이라이트로 꼽힌다.

아직 구체화하진 않았지만, 유명 음반사와 녹음 작업도 계획 중이다.

그러나 밀려드는 스케줄과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에서도 그는 다소 덤덤한 표정이다. 그는 원래 크게 자기감정을 드러내는 편이 아니다.

"유치원에 다닐 때는 하도 말을 안 해서 벙어리로 착각한 선생님들도 계셨대요.(웃음)"

그는 초등학교 2학년 때 누나를 따라 피아노 학원에 갔다가 재능을 발견해 뒤늦게 연주자 길을 걷게 됐다. 예원학교와 서울예고를 거쳐 미국 커티스음악원, 줄리아드 음대, 뉴욕 매네스 음대에서 수학했다. 어린 시절 '천재'나 '신동'으로 부각되지 않았지만 그는 묵묵히, 성실하게 자기 길을 걸었고 결국 서른을 앞두고 미국 최고 권위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을 일궈냈다.

그의 연주도 이런 성격과 닮은 구석이 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가 슈베르트.

"슬픈 여운, 잔향이 가슴 속에 오래 남는 게 좋다"는 게 이유다.

"사람마다 슬픔을 느끼고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잖아요. 누군가는 흐느끼고, 누군가는 목놓아 울고요. 제 경우는 조용히 눈물이 차올랐다가 한 방울 툭 떨어지는 스타일인 것 같아요. 그런 잔잔한 슬픔, 지그시 누르는 아픔 같은 감정을 잘 전달하고 싶어요."

한국 나이로는 딱 서른이 된 그에겐 그래서 서두르는 일도, 거창한 계획도 없다.

"나이나 주변 기대 같은 건 크게 신경 안 써요. 대학교를 졸업하면 취업해야 하고, 일정 나이가 되면 결혼을 해야 하고, 또 일정 시간이 지나면 부모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규칙은 이해하기 어려워요. 전 지금의 생활을 건강하게 잘 유지하고 싶어요. 성숙한 열정과 아이 같은 순수함을 모두 지닌 채로 연주를 오래 할 수 있길 바랄 뿐입니다."



sj997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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