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이 세계 해방운동 선도' 주장 재검토해야"
한승훈 교수, 학술지 '역사와 현실'에 논문 발표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내년이면 100주년이 되는 3·1 운동이 당시 약소민족 해방운동에 영향 혹은 자극을 주었다고 보는 주장을 재검토해야 할 시점이 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근대사 연구자인 한승훈 고려대 연구교수는 한국역사연구회가 발간하는 학술지 '역사와 현실' 최신호에 실은 논문 '3·1 운동의 세계사적 의의의 불완전한 정립과 균열'에서 해방 이후 3·1 운동의 선도성(先導性)을 강조한 학설이 형성된 과정을 추적했다.
한 교수는 일제 지배가 끝난 직후 1919년 일어난 항일독립운동인 3·1 운동의 선도적 위치를 언급한 기사가 수차례 보도됐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이승만 전 대통령은 동아일보 1946년 3월 1일자 신문에 실린 인터뷰에서 "세계에서 비폭력주의의 원조를 인도 간디씨로 말하나 사실 그 날짜를 상고해 보면 우리 만세운동이 먼저 시작됐다"고 말했다.
이후 1960년대까지 3·1 운동이 중국 5·4 운동은 물론 인도, 이집트, 필리핀에서 발생한 해방운동보다 시기적으로 앞섰다는 사실을 근거로 세계사에 미친 영향을 역설한 글이 잇따라 발표됐다.
이에 대해 한 교수는 "3·1 운동이 아시아 약소민족 해방운동에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는 중국 5·4 운동을 제외하고는 사료적 근거가 희박한 선언과 다름없었다"며 "학계에서는 비교사적 연구를 토대로 개별 운동이 갖는 각각의 특징을 밝혀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1970년대 접어들면서 3·1 운동의 독보적 선도성, 즉 '세계사적 의의'를 중시하는 견해는 더욱 부각됐다. 국가보훈처 전신인 원호처는 1971년 출간한 '독립운동사 2'에서 "3·1 운동이 세계사적으로 크나큰 위치를 차지한다"고 명시했다.
이어 1972년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 "3·1 운동이 중국 5·4 운동과 인도 사티아그라하(비폭력 불복종) 운동을 일으키게 한 선구적 역할을 했다"는 문장이 처음으로 주석 형태로 수록됐다.
한 교수는 3·1 운동의 선도성이 확산하는 데 기여한 인물로 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를 지목하고 "신 교수는 객관적 세계사 서술을 통해 모든 약소민족 독립운동 중에서 3·1 운동을 우월한 존재로 위치 지우고자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시간적 순서라는 단순한 논리로 무장한 3·1 운동의 세계사적 의의는 1982년 국사 교과서 본문에 삽입됐다"며 "검토 시간도 갖지 못한 채 3·1 운동의 역사로 굳어지는 듯했던 세계사적 의의는 2000년대에 미세한 균열을 보였다"고 덧붙였다.
한 교수는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양국 학자 간 교류가 늘어나면서 중국 학자들은 3·1 운동이 5·4 운동에 영향을 주었다는 일방적 설명에 이의를 제기했다"며 두 달에 불과한 3·1 운동과 5·4 운동 사이 시차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고 강조했다.
3·1 운동이 다른 민족운동에 영향을 미쳤다는 사료가 없는 상황에서 단순히 시점이 이르다는 이유로 영향력을 설파해서는 안 된다고 결론지은 한 교수는 이제 각국 해방운동에서 동시성에 기반한 상호 관련성을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조선인들은 언론을 통해 아일랜드 등 약소민족의 해방운동 사례를 접했고, 이를 통해 공감대와 연대의 희망을 품었다"며 "당시 약소민족들은 동시성 속에서 각자의 독립운동 방략을 공유하고자 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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