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랑'의 쓸쓸한 퇴장…희비 엇갈린 흥행 감독들

입력 2018-08-04 08:00
'인랑'의 쓸쓸한 퇴장…희비 엇갈린 흥행 감독들

관객 눈높이 못 맞춰…실패 딛고 재기하기도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올여름 기대작 중 하나로 꼽혔던 영화 '인랑'이 개봉 2주도 못 돼 박스오피스 퇴장을 앞뒀다.

지난달 25일 개봉 이래 이 영화를 본 관객은 약 88만 명. 총 제작비 230억 원이 들어간 '인랑'의 애초 손익분기점은 600만 명이다. 넷플릭스에 판권이 팔려 손익분기점은 그보다 낮아졌지만, 현 추세라면 극장 관객만으로는 제작비 회수가 불가능하다.

'인랑'은 '장르의 마술사'라 불리는 김지운 감독의 신작이다. 2년 전 750만 명을 동원한 '밀정'(2016)을 비롯해 '악마를 보았다'(2010),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 '달콤한 인생'(2005) 등 어떤 장르든 자신만의 스타일로 소화하며 관객과 호흡해왔던 감독이기에 예상치 못한 빠른 퇴장은 아쉬움을 남긴다.



'인랑'은 사실 제작단계서부터 우려와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일본 애니메이션 원작 자체가 무겁고 암울한 세계관과 색채를 지닌 탓이다. 대중적이기보다 마니아층이 열광한 작품이었다. 그래도 '믿고 보는' 김지운 감독이기에 이번에도 작품성과 흥행,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거라는 기대가 컸다. 강동원·한효주·정우성 등 인기배우들이 가세한 점도 기대감을 키웠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인랑'은 이런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강화복이나 지하 수로 등 원작에 충실한 비주얼은 돋보였으나, 스토리 전개에 허술함을 노출했다.

SF와 멜로, 액션, 누아르 등 다양한 장르를 섞은 시도는 참신했지만, 영화를 불필요하게 복잡하게 만들고 이도 저도 아닌 작품으로 보이게 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인간병기 임중경(강동원)의 심리적 변화를 이끄는 동기로 이윤희(한효주)와 멜로를 강조했으나, 세심하게 그리지는 못했다. '멜로가 뜬금없다'는 반응이 나온 이유다.

한 영화계 인사는 "김지운 감독 영화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며 실망감을 드러냈다.



물론 혹평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작품의 원작자 오시이 마모루 감독은 "영화 속 세계관, 각 인물의 이야기가 리얼했고 캐릭터들이 매력적이었다"고 호평했다.

관객들 사이에선 "일본 애니메이션을 실사화한 작품 중 최고"라는 평도 나왔다.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흥미진진한 부분도 많았지만, 대중영화치고는 플롯이 다소 복잡해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가기가 쉽지 않은 편"이라며 "테러단체인 섹트, 특기대, 공안부, 인랑까지 얽혀 사건의 계기가 많은 데다, 그 선들을 쉽게 구분하기가 여의치 않았던 것 같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빨간 망토 동화와 영화 이야기가 따로 노는 감이 있다"며 "그 결과 영화 제목인 '인랑'이 임팩트 있게 다가오지 않았다"고 평했다.

영화 외적으로는 대진운도 좋지 않았다. '인랑'은 '미션 임파서블:폴아웃'과 같은 날 도전장을 내밀었으나, 제대로 겨뤄보지도 못하고 참패했다. 이를 만회할 새도 없이 일주일 뒤에는 '신과함께-인과연'에 압도당하며 '퇴출' 수순을 밟게 됐다.



온라인상에서 작품과 무관하게 주연 배우 개개인에 대한 인신공격이 난무한 점도 악재로 작용했다. 일부 네티즌은 영화를 보지도 않고 악담을 쏟아냈다.

영화계 관계자는 "외적 요인도 있지만, 흥행에 가장 중요한 것은 작품 그 자체"라며 "영화가 관객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한 점이 주된 실패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충무로에는 '흥행은 신의 영역'이라는 말이 있다. 흥행 결과를 그만큼 예측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올해는 김지운 감독뿐만 아니라 여러 흥행 감독들이 고전했다.

장편 데뷔작 '부산행'으로 1천만 감독 대열에 오른 연상호 감독은 '소포모어 징크스'(2년차 징크스)를 극복하지 못했다.



올 초 그가 선보인 두 번째 장편 '염력'은 철거촌을 배경으로 한 슈퍼히어로 코미디로, 참신한 소재로 주목받았지만 99만 명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

'광해, 왕이 된 남자'(2012)로 1천200만 명을 불러모은 추창민 감독은 지난 3월 '7년의 밤'으로 흥행의 쓴맛을 봤다. 두 아버지의 비틀린 부성애를 그린 작품으로, 정유정 작가의 동명 베스트셀러가 원작이다. 추 감독은 "어차피 (관객을) 짓누르는 영화로, 그 짓누름이 그래도 흥미롭다고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 짓눌림은 불편함으로 이어졌고, 결국 관객의 외면을 받았다.



'동주'(2015), '박열'(2016)로 연타석 안타를 쳤던 이준익 감독은 '변산'(49만 명)에서 흥행 행진이 멈췄다. 이 감독은 한 무명 래퍼를 통해 젊은 세대에 따뜻한 위로를 건네고 싶어했지만, 요즘 젊은이들의 감성 코드를 제대로 읽지는 못했다. 영화 주 타깃층인 20대 사이에선 '촌스럽고 올드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반면, 흥행 실패를 딛고 재기에 성공한 감독들도 있다.

'마녀'의 박훈정 감독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여름 선보인 '브이아이피'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잔혹한 범죄 장면 때문에 여론의 뭇매를 맞고, 흥행에도 실패했다. 그러나 1년 만에 다시 선보인 '마녀'는 독보적인 여성 캐릭터와 탄탄한 스토리로 호평을 받으며 손익분기점(230만명)을 넘어선 319만 명을 불러모았다.

'신과함께' 시리즈로 한국형 프랜차이즈 영화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김용화 감독도 부침을 겪었다. 순제작비 225억 원이 투입된 '미스터 고'(2013)가 흥행에 참패하면서 오랫동안 힘든 시절을 보내야 했고, 그때의 실패 경험은 대중의 마음을 읽는 데 중요한 자양분이 됐다.

fusionj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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