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폭염] 펄펄 끓는 날씨…"가정용 전기누진제 폐지는 언제쯤"(종합)

입력 2018-08-01 18:16
수정 2018-08-01 19:39
[최악폭염] 펄펄 끓는 날씨…"가정용 전기누진제 폐지는 언제쯤"(종합)



도로엔 평소보다 인적 드물어…곳곳에 문닫은 점포들

"회사선 카디건 입고 근무, 집에선 전기세 겁나 에어컨도 맘대로 못 틀어"

'불판 고기굽기 사절' 술자리 풍경도 바뀌어…"정장 고집 문화 달라져야"



(서울=연합뉴스) 성서호 황재하 이효석 기자 = "재난 문자 보내면 무엇하나요. 가정용 전기에 대한 누진제를 폐지했다는 문자나 받아봤으면 좋겠어요."

현대적인 방법으로 기상을 관측한 1907년 이래 서울의 최고기온 기록이 경신된 8월의 첫날.

누진제로 인한 '전기세 폭탄'이 걱정돼 집에서는 에어컨도 못 튼다는 볼멘소리가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직장인 함모(31)씨는 "일본에서는 목숨이 위험할 만큼 덥다면서 에어컨 켜라고 나라에서 고지한다는데 한국은 당장 도움도 안 되는 재난문자만 온다"며 "회사에서는 카디건을 입고 일할 만큼 세게 냉방하는데 집에서는 전기세가 많이 나올까봐 마음껏 에어컨을 틀지도 못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대부분 직장인의 출근 시간인 오전 9시께부터 서울의 공식 기온은 이미 32.4도를 찍었다.

직장인 박모(32·여)씨는 "아침 9시에도 땀이 줄줄 흐를 만큼 더워서 지하철역을 나오자마자 에어컨을 쐬러 회사로 뛰다시피 갔다"면서 "이렇게 기쁜 마음으로 회사로 달려간 건 난생처음인 것 같다"고 웃었다.

점심시간이 시작되는 정오께 수은주는 점점 더 올라 36.8도를 기록했다.

점심을 먹고자 하나둘씩 사무실을 나선 직장인들은 양산을 쓰거나 휴대용 선풍기를 손에 쥔 채 재빠른 걸음으로 실내로 들어갔다.

이날 극심한 더위 때문에 시내를 조금만 벗어나도 평소보다 훨씬 인적이 드물었다. 노점은 물론 소규모 식당이나 점포도 영업을 쉬는 곳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서울 종로구 인의동 거리는 평소 노점상 10여곳이 운영되지만, 이날은 대부분의 노점이 문을 닫았고 2곳만 영업 중이었다. 그나마 발걸음이 드물어 상인들은 연신 부채질을 하며 손님을 기다렸다.

서울은 오후 3시 36분께 이날 최고기온 39.6도를 기록해 역대 최고기록인 1994년 7월 24일의 38.4도를 넘어섰다. 이날 서울의 최고기온은 평년(30.6도)보다 무려 9.0도나 높은 수준이다.

더위가 극에 달하면서 평소에는 걷기 불편할 정도로 사람이 붐비는 강남역 번화가도 이날은 한산했다.

대신 커피숍이나 영화관, 서점 등은 평소보다 사람이 훨씬 많아 앉을 자리를 찾기가 힘들었다.

지하철역 인근에서 약속 시간을 기다리는 시민들은 뙤약볕 아래에서 도저히 버티지 못하고 근처 가게나 건물 1층에서 거리의 열기를 피하면서 일행을 기다렸다.

김모(31·여)씨는 "태어나서 이렇게 일주일 넘도록 더운 적은 처음인 것 같다"면서 "봄·가을엔 미세먼지에 겨울엔 한파, 여름엔 폭염이라니 매년 이렇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민을 하고 싶다"며 혀를 내둘렀다.



차량정체 구간을 관리하는 한 교통경찰관은 "날이 너무 더우니까 구두에 발라놓은 구두약이 녹아서 구두가 쩍쩍 갈라지더라"면서 "선크림을 아무리 발라도 목 뒤가 빨갛게 익고 피부가 일어나 아내가 약을 발라줬다"고 말했다.

한 식품업체에서 영업직으로 일하는 하모(32)씨는 "'피가 끓는다'는 말이 비단 은유적인 표현만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지하철역 앞에서 인근 영어학원의 홍보 문구가 적힌 부채를 나눠주던 최모(49·여) 씨는 "몸을 시원하게 해준다는 쿨링 셔츠에 쿨 토시까지 찼는데도 땀이 줄줄 흐른다"면서 "그래도 전단이 아니라 부채를 나눠주니까 사람들이 기꺼이 받아간다"며 활짝 웃었다.

<YNAPHOTO path='PYH2018080108630005400_P2.jpg' id='PYH20180801086300054' title=''손선풍기와 부채'' caption='(광주=연합뉴스) 정회성 기자 =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진 1일 광주 동구 금남로 지하상가 만남의 광장에서 휴식객이 손선풍기로 바람을 쐬고 있다. 2018.8.1 <br>hs@yna.co.kr'>

펄펄 끓는 날씨 탓에 저녁 술자리 풍경도 바뀌는 모양새다. 사람들은 제아무리 에어컨을 틀더라도 뜨거운 불 앞에서 고기를 구워야 하는 식당은 피하고 싶다고 입을 모은다.

직장인 고모(31)씨는 "회식이나 모임 장소를 추천하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직접 고기를 구워야 하는 곳보다는 이미 조리된 요리가 나오는 곳을 권한다"며 "요즘 같은 날씨에 불 앞에 있는 건 상상도 하기 싫다"고 말했다.

해가 갈수록 날이 더워지는데 정장 착용을 고집하는 기업 방침이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회사원 김모(35)씨는 "여름철 회사가 그나마 용인해준 것은 '노 타이'(no-tie·넥타이를 매지 않는 차림)뿐이었다"며 "재킷까지 갖춰 입고 출퇴근하다 보면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다. 노랫말처럼 반바지까지는 아니더라도 무조건적인 정장 고집에서 벗어나면 좋겠다"고 꼬집었다.

한편 강원도 홍천의 수은주는 이날 오후 4시 정각 41.0도까지 치솟아 국내에서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래 전국적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강원도 춘천(북춘천)은 40.6도(오후 4시 33분), 경북 의성은 40.4도(오후 3시 58분), 경기 양평 40.1도(오후 4시 17분), 충북 충주 40.0도(오후 4시 16분) 등을 포함하면 이날 40도 넘은 지역은 5곳에 달했다.

so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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